트위터와 인드라망

인드라망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 보려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Inuit님의 블로그에서 트위터에 대한 글을 읽다가 인드라 망이 떠올랐다.

인드라망과 트위터에 모두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얘기하자면…
Inuit님은 트위터가 ‘정확히 사회학적 링크를 디지털로 모사한 결과입니다’라 했는데 더 근원적으로는 ‘인드라망을 모사한 아주 원시적인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사물은 시공을 초월하여 닮은 꼴로 존재하고 끊임없이 확장해 가고 있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또 다시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컴퓨터를 진화 시키고, 사회적 관계망인 트위터 역시 자아의 신화인, 인드라망을 따라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합니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며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장엄한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인드라망)이 있다고 합니다.

제석천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그물(인드라망)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코마다의 투명구슬에는 우주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삼라만상이 투영된 구슬들은 서로서로 다른 구슬들에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작은 구슬은 큰 구슬에 투영되고 큰 구슬은 작은 구슬에 투영된다. 동쪽 구슬은 서쪽 구슬에 투영되고 서쪽 구슬은 동쪽 구슬에 투영된다. 남쪽 구슬은 북쪽 구슬에 투영되고 북쪽 구슬은 남쪽 구슬에 투영된다. 위의 구슬은 아래 구슬에 투영되고 아래 구슬은 위의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투영되고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투영되고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시간의 구슬은 공간의 구슬에 투영되고 공간의 구슬은 시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동시에 겹겹으로 서로서로 투영되고 서로서로 투영을 받아들인다. 총체적으로 무궁무진하게 투영이 이루어진다…

수학자의 화엄경 읽기 – 인드라망

팔로우 관계를 통해, 급속히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세 가지 갈래로 사회화 과정을 일으킵니다.

  • Inter-follow: 상호 이야기를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MSN 같은 전문 메신저 서비스에 비해 불편하지만 다자간 대화도 가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친구 서너명이 큰소리로 떠드는 모드입니다. 모두가 딴전 피우면서 무슨 말 하는지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 재미나면 슬슬 끼기도 하지요. 그래서 일반적 채팅과 다르게 유리속 대화방처럼 작동합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개인 대화를 하는거지요. 저는 전화번호 따는 트윗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 채팅 역할은 하지만 군중 속에서의 채팅이라는 미묘한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단 내 팔로윙이 많아야 그들끼리 채팅하는걸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 Uni-follow: 이는 유명인사나 기관 같은 경우입니다. 맞 팔로우 안 들어오니 일방적으로 정보를 청취합니다. 여기에서 정보의 흐름 방향이 생깁니다. 허브에서 주변 방향으로 정보가 흐릅니다. 뉴스라면 속보가 어느 트위터에게 걸리고 이는 RT를 통해 트위터 사용자에게 순식간에 전파됩니다.
  • Socializing RT: RT의 사회학적 의미를 짚어야 합니다. RT는 retweet인데 그냥 남의 말을 한번 더 내 입으로 반복하는겁니다. 별 바보 같은 짓이다 싶지만 RT가 갖는 트위터 내의 역할은 지대합니다. 앞서 말했듯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팔로워 범위, 또는 그룹이 다 다릅니다. 이론적으로 모두가 모두를 팔로우 하면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두 부분집합만을 팔로우합니다. 그래서 클러스터처럼 행동합니다. 정보와 수다가 지인 그룹 내에서 순환하고 소비되지요. 그러나 중요한 정보는 임계치를 넘어 클러스터를 건너갑니다. 바로 RT의 역할입니다. 내 팔로우 범위안에 없는 사람일지라도 RT 한방이면 내가 습득한 정보를 바로 취득합니다. 내 트윗을 매개하는 한 사람이 RT 날려주면 나를 모르는 그의 팔로워들이 내 정보를 취득하지요. 정확히 사회학적 링크를 디지털로 모사한 결과입니다. 또한 RT가 가진 클러스터간 접착제(glue) 기능이기도 합니다.

    Twitter semantics (2): 트위터의 중독성과 권력구조

대흠.

생각공장 만들기

구월산님의 ‘생각공장 만들기‘ 블로그의 글들은 읽어 내려가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틈나면 읽어 보려고 인쇄를 했습니다. 저도 마음공부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가졌는데 ‘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처음 접하고 생각이 꽉 막혀 버리더군요. 생각공장의 이 라인은 생산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생각과 마음에 대한 분석적 접근에 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이먼&가펑클이란 포크 듀오 멤버인 폴 사이먼의 어느 앨범에 ‘I think too much’란 노래 제목을 한 때 별명으로 삼은 적이 있을 정도로 잡념, 근심, 연민 등 생각이 많았고 지금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상이란 간판에 어울리지 않게 제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을 생산해내는 ‘생각공장’ 입니다. 이 생각공장으로 부터 뭔가 원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제가 하는 작업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직관에 가까운 느낌을 붙들고 이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직관 혹은 우연의 일치

최근 며칠 사이에 몇 가지 직관 혹은 우연의 일치를 경험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것이라 보는데 대부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넘겨 버리거나 아니면 의식 조차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다음은 내 의식에 기록된 바로 그 사소한 사건들이다.

1. 구월산님의 블로그 ‘생각공장 만들기‘ 에서 글을 읽는데 갑자기 ‘프리에이전트(Free Agent)’란 용어가 떠올랐는데 바로 다음 패러그래프에서 구월산님이 그 이야기를 꺼냈다.

2. Inuit님이 시작한 ‘독서 릴레이’에 구월산님으로 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초대 받기 며칠 전 뜬금없이 책꽂이에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눈에 띄고 책을 꺼내들어 아무데나 펼쳤는데 ‘자아의 신화’란 말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그게 나의 독서론의 주제가 되었다.

3. 하나 더 있는데… 생각이 잘 안납니다. ㅜㅜ (나중에 생각나면 업데이트 하죠.)

PS.
마이드콘트롤에 주관적 참고점(Reference Point)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20년 전에 들은 강의 내용이 생각이 나네요. ^^  피터 드러커 선생께서도 그랬죠. ‘측정할 수 없으면 경영할 수 없다.’

정신수련이란 게 진도를 측정할 적당한 방법이 없는데 주관적 참고점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 밖에 모르지만… 앞으로 작업이 진행되면서 부산물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면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할 것으로 봅니다.

작은 느낌이나 우연의 일치라도 언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주관적 참고점을 마음 속에 새기고 가는 것은 성장에 있어서 좋은 습관이 될 거라 믿습니다.

대흠.  

명상 [瞑想, meditation]

나는 내 블로그를 통해 명상이란 단어를 오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글을 통해 이에 대한 부담을 좀 덜어야 겠다. 선승(禪僧), 요기(요가 수행자) 혹은 조식(調息) 수행자 등 정도를 걷는 분들이 보면 사술[邪術]로 대중들을 미혹하게 한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Busienss Meditation, 마인드 컨트롤 등 기타 서양의 정신응용학에서 말하는 명상은 엄밀히 말해 명상이 아니다. 수행 단체 마다 나름대로 명상에 대해 정의한 바가 있겠지만 나는 명상, 행위가 아닌 상태로서의 명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명상은 완전한 수동적인 상태로서 나(ego)가 사라진, 즉 개체가 우주와 합일이 된 상태(物我一體)’를 의미한다.”
 
마인드 컨트롤과 같은 정신 응용기술들은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정신을 특수한 상태로 만든 다음 시각화(Visualization) 등을 통해 목표한 바를 이루려 하는 기술이다. 즉, 내가 없어지면 의미가 없는 술법들이다. 내(ego)가 존재함으로써 욕망, 바램, 희망 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파의 상태는 수행자들이 명상에 들 때와 같은 상태로 나타난다. 깨어 있는 의식은 베타 상태라 부르고 가벼운 수면 상태 혹은 비몽사몽의 상태에서는 알파파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더 낮은 의식 상태은 쎄타 그리고 델타 상태라 구분해서 부른다.

종전의 마인드 콘트롤에서는 알파 상태를 이용했는데 요즘 이 분야 기술도 많이 발전했는지 – 직접 해보거나 검증을 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 쎄타나 델타 상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위 Remote ViewingRemote Influencing, 즉 정신만으로 원격지의 사물을 찾거나 보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다.
 
이런 정신 상태를 응용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에서 말하는 명상은 엄밀한 의미의 명상이 아니다. 물론 이런 작업 중에 명상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응용해서 현실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道人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대흠. 

ps. 명상 대신에 쓸 수 있는 적합한 용어가 무엇일까? … 아직도 생각 중이다.

심심함에 대하여

나이는 좀 먹었지만 TV 세대인 나는 집에 혼자 있을 때 TV를 켜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그런데 며칠 전 중국에 사는 동료와 얘기 중에 중국 사람들은 TV를 보지 않아도 항상 소리를 크게 해서 켜놓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원초적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 말했죠. 외부 자극이 없으면 에너지가 내부로 향해 그 캄캄하고도 몹시도 두려운 내면의 세계와 대면을 할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죠. 아마도 이걸 회피하기 위한 의식 혹은 무의식적인 행위일 것입니다.

난 괜찮아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TV에다가 인터넷 회선 마저 잘라버리면… 그래도 괜찮을까?

그래도 괜찮아~ 하면 이번에는 방문을 밖에서 대못질로 막아 버리고 창문도 빛 한줄기 새지 않도록 가리고 …

그야말로 캄캄한 암흑 속에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3일만 있어보라고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와이프는 그렇게 좀 쉬다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루만 그렇게 편안하게 누워 잠이나 자고 피로가 다 풀리면…
이틀이 남습니다. 캄캄한 방에서 아무 것도 할 일도 없이… ^^
그래서 난 못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심심한 걸 유난히 견디지 못합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심심한지… 왜 그걸 못견디는지
아마도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자신들이 겪은 그 암흑(?)의 내면 세계에 시간적으로 가까운 데 비해
그걸 가리워줄 지식이나 경험 등 세상의 자극들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걸로 트랙백을 결려다가 얘기가 옆으로 너무 많이 샜군요. ^^
류한석님이 “아무 소리가 안 나면 왠지 쓸쓸해서요”라고 하는 바람에…

대흠.

현장 밀착형 서비스

요즘 웹사이트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을 영어권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번역하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 올린 성과중 하나는 바로 ‘현장 밀착형 서비스’다.

오전에 약간의 분노(?)가 일어나 영감이 잘 작동하지 않고 몸상태도 좋지 않아 점심시간에 지하 주차장의 차 안에서 취침에 가까운 알파 명상에 들어 갔다. 특별한 주문은 하지 않았으나 돌아와서 책상에 앉으니 바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현장은 Field, 밀착형 혹은 친화적인의 ‘ Friendly’ 2개의 의 단어가 생각났는데 그 둘을 합치니 ‘Field-friendly’란 영어 개념이 생겨났다.

그 다음 구글에 들어가 검증을 해야 하는데 “Field friendly”라 검색을 하니 무려 만개가 넘는 페이지가 검색이 되는 것 아닌가!

비록 기술 마케팅 문서지만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 생각한다.

‘Field-friendly Service’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