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의해서 대흠 | 6월 9, 2013 | Spirituality/Business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신의 능력을 개인적인 목적에 끌어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히말라야 대사들에 따르면 신은 인간에게 그의 권능을 부여했고 인간이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락 했다고 한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허공에서 빵을 만들어 내고, 벽을 뚫고 순간이동을 하기도 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무리들까지 물 위를 걷게 하는 도술을 부린다. 그러나 대사들은 그들의 엄청난 능력에 어떠한 권위도 내세우지 않으며 매우 겸손하고 능력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한다. 그들은 인간은 주어진 그러한 능력을 이용하여 삶의 풍요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음과 양은 전방위적으로 분화한다. 원리와 물질을 음양(陰陽)의 관점에서 보면 원리는 ‘양’이요 물질은 ‘음’이다. 단순히 원리가 물질에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음양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원리에 집착하고 부나 물질을 금기 시 하면 그 원리는 도그마(dogma)로 변질되고 원리에 집착하는 자는 근본주의자가 되고 근본주의는 폭력으로 변질되기 쉽다. 반대로 돈에 집착하여 음이 강해지면 마찬가지로 음양의 조화가 깨지게 된다. 음양의 조화 속에 있을 때 우주 만물은 막힘없이 흘러가면서 진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음양오행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정도 이해하는데 뭐 깊고 어려운 공부가 필요한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원리나 이론이라도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해석을 독점하고 있는(심지어는 마음 깊은 곳에 그것을 통해 대중들에게 군림하려는 욕심을 품고 있는) 일부 인간의 오만, 독선 혹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음이 강해져서 사람이 부나 돈에 집착하는 것은 경계를 해야 한다. 특히 부나 돈을 획득하는 방편으로 우주의 원리나 신의 권능을 이용 한다면 더욱 그렇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저자 바딤 젤란드는 인간이 외부의도(신의 힘)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이 아틀란티스 등 고대 문명들이 멸망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봉우 권태훈옹은 사욕을 채우려 도술을 함부로 쓰면 신의 벌(神罸)을 받아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했다.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서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이 다치게 되는 것이다.
부를 추구하고 누리는 것은 의식의 진화를 위함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를 경험함으로써 진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부처, 예수, 어떤 성인도 그들의 어느 멀고 먼 이전의 삶에서 같은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오쇼 라즈니쉬도 어느 책에선가 그런 말을 했다. “부처나 예수 같은 성인들도 태평성대에 출현한다”. 다른 대륙에 비해 아프리카에서 성인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이를 뒷받침 한다고 본다. 의식을 지수로 나타낸, 도판에서 생불로 칭송을 받던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 박사의 국가별 의식 측정지수를 보면 미국인이 한국인 보다 의식지수가 월등하게 높다. 굳이 이런 검증되지 않는 지수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인 면에서 미국인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높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 건 영적으로도 중요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통 사람들 사이에 부자나 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돈이 들어오는 길을 막는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이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었던 관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부를 추구하고 경험하고 즐겨야 할 것이다. 동시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며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흠.
에 의해서 대흠 | 12월 24, 2012 | 리얼리티 트랜서핑
오랜만에 검색을 해보니 리얼리티 트랜서핑과 저자 바딤 젤란드에 관한 자료가 많이 보이네요. 그동안 자료(영문)가 거의 없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인물인데 위키에도 조금 소개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잠시 드는 한 생각으론 그가 자신의 책에서 말하는 펜듈럼이나 잉여 포텐셜 등의 네가티브한 에너지들로 부터 자유롭게 머물고 싶어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키에 소개된 바딤 젤란드
바딤 젤란드 인터뷰
내용 중에 씨크릿과 트랜서핑을 비교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 번역했습니다.
Q. 시크릿과 당신의 책은 어떻게 다른가요?
유일한 차이는 같은 지식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여러가지 가르침들을 비교한다면 우파니샤드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 모든 지식들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옵니다. 같은 이유로, 종종 다른 사람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걸 발견하게 되지요. 그리고 많은 새로운 흐름들이 지구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다른 가르침들과 공통점이 없는 다른 뭔가를 갖는 가르침이 있는지 찾아 보세요. 만일 그런 걸 찾았다면 그건 다른 현실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우리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조만간에 공상과학 이야기 조차도 현실로 될 것입니다. 공상과학 작가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꿈을 포함하여 이러한 모든 아이디어와 이미지들은 인간 마음의 산물이 아닙니다 – 그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으며 필요한 모든 부분이 갖춰진 완전한 정보장에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교사(Teachers)”들과 일반인들은 같은 데이타베이스 정보에 접근합니다.
그것은 도서관에 가서 어떤 서가에 당신이 좋아하는 어떤 책이든 꺼내는 것만큼이나 간단합니다. 하나의 조건으로, 당신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지식에 접근할 당신의 권리를 사용하며 그 다음, 그것을 갖겠다고 의도 해야만 합니다. 당신 자신에 몇가지 질문을 해보세요. 그것들에 대해 당신 스스로 답을 해보기 바랍니다. 용기를 가진 자는 새로운 발견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책을 쓰며, 다양한 분야에서 걸작을 창조합니다. 지식은 그것을 받아 들이기 위해 의도를 선언한 자에게는 열려 있습니다.
대흠.
에 의해서 대흠 | 12월 30, 2009 | 리얼리티 트랜서핑
순서가 좀 바뀌었다. 늦었지만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저자를 소개한다. 별로 말할 것도 없지만… ^^

젤란드 웹사이트
舊 소련의 양자물리학자였고, 이후에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다. 다중우주 이론을 기반으로 현실변환 기법을 설명한
[리얼리티 트랜서핑]시리즈로 단숨에 러시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본 시리즈의 번역 출간이 진행되고
있으나, 유명세를 원하지 않는 탓에 저자의 개인적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책에 소개된 개념들이 신비주의
교의들과도 통하는 바가 있어 ‘현대의 신비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출처 : 인터파크
에 의해서 대흠 | 12월 13, 2009 | 리얼리티 트랜서핑
아마도 그 전환점은 내가 삶에서 극도로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던 때인 것 같아요. 내가 25년 전에 나의 책 “
트랜서핑”을 읽었더라면, 내 삶은 훨씬 더 평온하고 바람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아마 이 책을 쓸 수 없었겠지요… 그 모든 시련 끝에 어떤 채널이 열렸고, 그 통로를 통해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평생 나는 반(反) -트랜서핑을 해왔어요. 트랜서핑과는 반대로 해왔다는 거죠.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보고 배우지만, 바보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배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바보였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와 남의 실수 중, 어느 것에서 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영리한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만 알지요. 달리 말하자면, 영리한 사람은 정보만 알고 있을뿐, 그것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와 달리 바보는 부딪혀 머리에 혹이 날 때마다 거기에서 실수의 핵심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지요. 오직 바보만이 신비지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에서 발췌-

이것은 의미있는 우연의 일치이거나 아니면 내가 바딤 젤란드와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하나의 잉여 포텐셜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나도 지난 25년 간의 직장 생활 속에서 트랜서핑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다. 나 역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많은 펜듈럼들과 전쟁을 벌여왔다. 그 가운데는 스스로 만든 잉여 포텐셜로 인해 균형력의 제어를 받았던 적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바딤 젤란드가 위에서 한 말처럼 바보처럼 스스로 부딪혀 얻은 많은 혹들을 머리에 가지고 있고 그것이 삶의 교훈이 되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난 25년간 나를 괴롭혀온 펜듈럼들에게 원망의 마음은 전혀 없다. 거기에는 어떤 합리, 논리 등의 이유를 붙일 수 없다. 그 모두 내 자신이 불러들인 펜듈럼들이고 내가 그것들에 동조를 한 결과이기 때문에 …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지금 나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반면에 지금 알고 있는 트랜서핑 같은 지식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나의 이러한 경험이 타인을 위한 것이 될 가능성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대흠.
에 의해서 대흠 | 12월 7, 2009 | 리얼리티 트랜서핑
자연 속의 모든 것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기압이 하강하면 바람이 불어와 다시 균형이 회복된다. 온도의 차이는 열교환에 의해 보상된다. 에너지의 잉여 포텐셜(Potential)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불균형을 제거하려는 균형력(균형을 유지하려는 힘)이 나타난다.
이 세상은 전체가 ‘
펜듈럼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어떤 펜듈럼은 강하게 흔들리고 있고, 또 어떤 것은 힘이 약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서로 상호 작용한다. 각각의 펜듈럼은 이웃한 펜듈럼으로 부터 자극을 받고, 또 그것들에게 자극을 준다. 이 복잡한 전체 시스템을 지배하는 근본 법칙 중의 하나가 바로
균형의 법칙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균형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큰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할 때, 혹은 평가절하 할 때 사념 에너지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릇된 평가는 두가지 경로를 통해 생길수 있다. 하나는 대상에게 지나치게 부정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가의 오류, 그 자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 그릇되고 왜곡된 평가는, 그것이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에만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한 대상과 상황만이 당신의 평가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잉여 포텐셜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때로는 방심할 수 없이 위험한 역할을 한다. 이 포텐셜을 제거하려는 균형력의 작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할 때 일이 어느 단계에 오르기 전에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아마도 잉여 포텐셜을 만들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란 성경 말씀도 역시 잉여 포텐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인트컨트롤에서도 소망을 프로그램(기원)할 때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다.
불만을 갖는 것도 잉여 포텐셜을 만들고 특히 남을 경멸할 때 잉여 포텐셜이 크다고 한다.

트랜서핑의 원리의 밑바닥에는 동서양의 현자들이 이미 수도 없이 했던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 저자 바딤 젤란드는 이를 에너지적 관점에서 성공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중용(中庸)의 도(道)’ 가 그렇고,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어떠한 상황에도 한 곳으로 치우침이 없는 도리, 진정한 삶의 중심을
지키면서 자신의 주체를 잃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군자의 길이거니와, 이 시대에서는 성공하는 사람의 자세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의 트랜서핑 카테고리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하거나 발견되는 펜듈럼, 잉여 포텐셜 등의 사례를 이야기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로 하여금 더욱 깨어 있도록 정진할 것이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