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나의 독서론

[부제] 책과 나

읽은 책도 얼마 안되는데 독서론을 쓰려니 좀 부담스럽군요. 하지만 읽은 책의 양을 떠나서 독서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 할 말이 없는 건 아니고요. 앞선 분들이 간결하게 쓰셨는데…
사실 이 이야기는 전 부터 블로그에 써보고 싶었던 것이라 이번 기회를 빌어 책과 관련된 제 살아온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

1. 독서란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다.]

바로 지난 주 책꽂이에 꽂혀있던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다시 꺼내들어 아무데나 펼쳤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말, 연금술사의 키워드인 ‘자아(ego)의 신화’다. 지금 생각인데 내가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것과 독서 릴레이에 추천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세상만사는 설사,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다 의미를 갖고 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 어느 하나도 인연생기를 따르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군대 가기 전 대학 시절까지 거의 책을 읽지 않고 그저 뛰어 놀거나 기타를 튕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던 시절 그래도 기억에 남는 소설이 하나 있다. 중학교 때 읽었던 이상의 ‘날개’다.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어린 시절에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어찌 그리 감동적이었는지 나에게는 하나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이 감동은 자아의 신화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에 기인하는 것일게다.

[#M_||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1936>

_M#]

 

군대를 다녀와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알게된 헤르만 헷세. 그의 대표작 ‘데미안’을 읽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자아의 신화를 찾아 가는 이야기다.

어릴 적 나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학교 선생님들의 상투적인 말씀은 내게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대학 시절 같은 과 친구가 책을 들고 다니는 책 표지 안쪽을 들여다 보는데 나의 의문에 답이 될 만한 조각 글이 눈에 띄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당장 책을 구입했다. 라즈니쉬, 마하리쉬와 함께 1980년대 세계 3대 구루(Guru) 중 한 분으로 소개되곤 했던 크리슈나 무르티의 ‘자기로 부터의 혁명’이란 책이었다.  당시 나에겐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 꾸역꾸역 다 읽긴 했는데 3분의 1도 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번 째 만난 구루는 오쇼 라즈니쉬였다.  홍신자와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마하무드라의 노래’
이 책을 읽으며 크리슈나 무르티가 전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보면 종이에 글자 새겨 넣은 것이 책인데 이 책속의 글자들로 인해 스무살, 서른살 시절의 나는 인도 구루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책에 빠져 있었다. 라즈니쉬 가르침의 근본은 일반인의 논리나 객관성, 이성 등과 거리가 멀지만 나의 사고나 논리 체계의 근본은 거의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독서에 대한 나의 의문은 라즈니쉬에 의해 마침내 풀렸다.

독서는 인간의 에고를 강화시키는 행위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자아를 실현하고 더 나아가서는 완전한 자유(眞我)를 추구할 것이다. 

그 뒤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여유가 생기면서 인도의 구루들 외에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약간의 인문학 분야의 책들을 접하게 되면서 편협한 경험과 지식을 보완할 수 있었다.

책과 그것으로 인한 사유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세상의 모든 탐구나 도전은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궁극적으로 하나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이다.

지금은 Business Meditation이라는 간판을 걸고 세속적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속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있다. 그리고 책은 내 안에 잠든 진정한 나(眞我)를 흔들고 깨우며 운명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앞선 릴레이 주자
릴레이경로 : Inuit -> 유정식님 -> 쉐아르님 -> 최동석님  -> 구월산님 (생각공장 만들기)

3. 릴레이 받아주실 분
나이로 따지면 아래로 띠동갑도 안될 분인데 그의 삶 자체가 존경스럽습니다.  앞서서 릴레이에 참가하신 분들은 첨단 디지털 세계의 분들이고 멀더님도 블로거이긴 하지만 영성이란 주제를 다루는 분입니다. 
첨단의 디지털 문명과 문명의 시원인 아날로그 영성을 연결하는 것도 여러 모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멀더님, 사양하셔도 됩니다. ^^ 

오컬트 연구소 멀더님의 다락방 서재 

<토바야스와의 밤> 행사 열려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에 올라 온 포스팅을 링크합니다.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호흡의 효과와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흥미거리가 될 만한 부분을 발췌 인용했습니다.
특히 예언에 관심이 많아 제프리&린다 부부가 한 예언을 지켜볼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컬트 연구소의 포스팅을 참고 바랍니다.

대흠.

세계적 채널링 메신져 제프리&린다 부부 내한

… 채널링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객석 전체가 하나 되는 호흡 명상이 진행되었는데, 약 40분 정도 진행된 “전체 명상 호흡” 중간 중간, 제프리와 린다 씨의 <호흡의 중요성과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골자의 강의가 이어졌다.

“깊게 의식적인 호흡만 해도 생명력이 충만해 진다. 호흡은 단순히 숨쉬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내일, 한달, 일년 뒤의 나에게 생명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럼으로 의식적으로 조용히 호흡을 하는 것은 삶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

…한국은 올해부터 경제적, 과학적, 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앞으로 3년 동안 남북통일의 기초가 다져지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덪붙였다…

멀더의 영화평 ‘지구가 멈추는 날’

입찰 때문에 전라도 광주에 있는데 시간이 남아 PC방에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멀더님의 오컬트연구소에 글이 올라 왔군요.

요즘 읽고 있는 마이클 뉴튼 박사의 <영혼들의 여행>이란 책과 함께 육신의 삶과 영혼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일깨웁니다. 이 책은 영혼의 세계에 대한 정말 좋은 책, 아니 보고서라 생각합니다. 

대흠.

멀더님 포스트 일부를  아래 인용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건질 것은 내용이 아니라 외계인들의 영성적인 사고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당신도 고통을 느끼냐는 지구인 과학자의 질문에 외계인은 이런 대답을 합니다.
“느낀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이 느끼는 것이다.”
오오~ 완벽한 비파싸나(바라보기 명상)입니다.
마취없이 손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신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나
역시 마취없이 팔 절제 수술을 받은 라마나 마하리쉬 선생의 수준입니다.
이 몸이 진정한 나(진아)가 아님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엄청난 수준의 존재입니다.


또 이런 장면도 나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제일 짜증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흑인 꼬마애가 외계인에게 자신의 죽은 아버지를 되살려 달라고 뗑깡을 피웁니다.
그러자 외계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아이를 위로합니다.
“죽는다고 진짜 죽는게 아니다. 그것은 몸의 죽음일 뿐 우주 어디에선가 다른 형태로 살아 숨쉬고 있다…

영성적인 외계인과의 조우 <지구가 멈추는 날>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었다

컨텐츠를 생산할 여건이 안되는데 포스팅 욕심은 일어나고… ^^
오컬트 연구소 소장이신 멀더님 글을 링크합니다.
이삼십년 전에 소태산 대종사님에 대한 글을 선사상이란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대흠.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었다
인생을 바뀌게 하는 이상한 만화책
소태산 대종사께서 불법을 연구하시어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원불교를 창건하신지도 100여년이 지났다. 기존의 불교는 너무나 방대하고 격식이 복잡하기 때문에 보다 더 생활 속에 밀착된 교리로써 재탄생한 것이 원불교인데 그렇게 본다면 원불교는 기존의 수 많은 불교 경전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방귀 뀐 놈이 성내고
말 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떠들어 대고…

어찌 이러한 인간사가 지금 뿐이었으랴~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선 당연한 것 아니었던가?

한때 인도의 신비 사상가들에 심취했다는 자가
그 유명한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찜찜하던 차에
성서 중의 성서‘라는 멀더님의 꼬임(?)에 넘어가 바가바드 기타를,

글을 짓는데 있어 틀을 벗어나 보고 싶다 했더니
다인이 아빠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 1‘을 소개했다.

그 두 권의 책이 지금 책상 위에 도착했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