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펜듈럼들에 휩싸여 혼란스럽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휴일을 보내다가 책 1권을 꺼내들고 읽으며 구글 노트에 기억하고 싶은, 소개하고 싶은 글들을 적어 가는 작업을 이어간다. 그저 그런 평범한 말들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음미하면서 마음에 새겨 본다. 펜듈럼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그 실체를 깨닫게는 날 이 글을 보면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대흠-
모든 것은 에너지입니다. 기적도 에너지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생각과 긍정적인 감정이란 에너지로 만들어 집니다.
파괴적인 펜듈럼과의 게임을 벌이지 말고, 쓸모가 있어 보이는 펜듈럼을 찾아서 게임을 벌이라. 이것은 긍정적이고 좋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좋은 것, 기쁘고 고무적인 것을 보거나 읽거나 듣거든 당장 그것을 자신의 생각에다 들여놓고 행복을 느끼라.
그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기억하라.
우리는 습관적으로 무미건조한 일상의 삶으로 다시 빠져들면서 멋진 일들을 망각한다. 그러면 삶은 더 이상 기쁨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나쁜 습관이며, 우리를 망각에 빠뜨리는 것은 펜듈럼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가진 모든 것에 기뻐하라.
관념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기뻐하고 행복해야 한다. 때로는 만족하기 힘든 상황도 찾아 오겠지만, 순전히 실질적인 관점에서 봐서도 무엇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매우 건설적이지 못한 일이다. 만사가 당신을 위해 완벽하게 움직여 주는 트랙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당신이 방사하는 에너지가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거기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런 불만의 파동은 불행한 인생트랙과 딱 맞는다. 그래서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좋은 인생트랙이란 그 위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생각이 즐거움과 만족으로 가득차는, 그런 곳이다.
나쁜 소식에는 문을 닫고 좋은 소식에 마음을 열라.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이든 인정하고 소중히 돌봐야 한다. 그런 긍정적인 변화들이 성공의 물결에 앞서 오는 전령들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고무적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습관처럼 이내 잊어버리지 말고 그와 정반대로 하라. 그 소식을 음미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추적하라.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그것을 생각해보라. 그 안에서 기쁨을 얻고 그것에 대해 추측해보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발전해가기를 빌라. 이렇게 하면 당신은 성공물결의 주파수로 생각하게 되고 그 매개변수에 동조된다. 그래서 결국 좋은 소식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당신의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검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낙관적인 사람은 장밋빛 안경을 쓰고 본다는, 즉 정보를 저마다 다른 여과해서 받아들이는 인간심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이 지닌 매개변수와 일치하는 인생트랙으로 옮겨 다니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평범한 속담이 있다. 정말 그렇게 믿기만 한다면 이 말은 마법처럼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늘 화내고 좌절하는 오랜 습관을 밀쳐내고 단호하고 끈질기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당신을 옭아매려는 펜듈럼임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을 기억하는 순간, 당신은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밖으로 퍼부음으로써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줄 것인지, 아니면 펜듈럼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여 승리를 얻어낼 것인지를. 그것을 기억해내기만 한다면, 펜듈럼을 그냥 지나가게 하거나 꺼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요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펜듈럼의 공격을 엄청나게 받고 있다. 펜듈럼의 손아귀에 걸려 들지 않으려 방법을 생각을 하면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책장을 뒤질라 하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멸감과 분노 그리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를 보며…
중요성을 내려 놓으라는 메세지가 떠오르나 어디를 어떻게 놓아 버려야 할지 모른다. 책 3권을 꺼내들고 아무 곳이나 넘겼더니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온다. 지금 내가 취해야 할 자세인 것 같다.
나의 트랜서핑 수련에 좋은 과제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제나 환경이 주어지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펜듈럼도 없고 마음도 편안한 상태에 있다면 트랜서핑 수련을 할 방법이 없다.
대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뭐든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라.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즐거워하라. 실패를 축하하는 ‘바보같은’ 습관을 만들라. 이것은 어쨌든 짜증내고 투덜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재미가 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불행이 바람직한 쪽으로 전환되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음은 확신해도 좋다. – 긍정적인 태도 덕분에 당신은 바람직한
갈래로 올라왔고, 다른 말썽거리를 피한 것이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 3권 조율- 의도의 조율 P147
요즘은 마인드컨트롤 수련 과정은 잠시 접어 놓고 영혼 느낌의 경계를 들락거리며 산다. 그만큼 영감이 살아나고 있다는 말이다.
마케팅의 대부라 불리우는 필립 코틀러 박사의 ‘마켓3.0‘이란 책을 보고 있는데, 그는 다가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장에서 ‘영혼’을 중요한 키워드로 강조한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서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당연히) 영혼을 깊이로 접근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영혼의 실체와 맞닿아있다는 느낌은 든다.
이제 비니지스에서 본격적으로 영혼을 거론하기 시작한다. 아래 바딤 젤란드의 말이 맞다면 앞으로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은 마음이 영혼의 ‘미약한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데서 시작할 것이란 생각이다.
대흠.
가능태 공간은 하나의 정보장 또는 에너지 매트릭스, 곧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모델이다. 매트릭스의 특정 섹터에 동조된 에너지가 이 섹터를 ‘조명할’ 때, 이 모델은 물질의 형체를 취하며
현실화된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일어난다. – 물질화 되기 전의 형태로 있을 때에도 이 정보를 이용할 수 있을까? 말을 바꿔서,
우리는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날마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식은 가능태 공간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잠재의식은
정보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이 정보장이 바로 예감, 직관, 예견, 예언, 새로운 발견 그리고 예술의 걸작이 나오는
곳이다.
정보는 의식 속으로 들어갈 때, 외부 데이터에 대한 해석으로서 바깥세상으로부터 들어가거나, 혹은 직관의 차원에서 잠재의식을 통해
들어간다. 정보장에 기록된 데이터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운 객관적
정보이다. 사시리 마음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 그것은 해석, 곧 ‘지식’으로 바뀐다. 모든 생명체는 사실을 자신의 해석을 통해
인지한다. 병아리는 인간의 방식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이해한다. 심지어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사물을 저마다
서로 다르게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이란, 정도는 다를지언정, 진실의 왜곡된 형태에 지니자 않는다.
정보장의 데이터는 복잡한 에너지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에너지체는 물질로 하여금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잠재의식(영혼)이 정보장으로 부터 데이터를 받아 들이면 의식(마음)이 그것을 소리나 상징으로 번역한다.
이것이 새로운 것 – 음악, 미술작품 등 사람이 직접적으로 보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 -이 창조되거나 새로이 발견되는 방식이다.
또한 직관적 지식과 예감이 일어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 가능태 흐름 –
의식과 관련되는 모든 것을 ‘마음’이라 하고 잠재의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혼’이라 부르기로 하자. 영혼이 말해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마음이 이해했더라면 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정보장에 바로 접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의 문명이 얼마나 높이 진보했을지는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마음은 영혼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주의는 바깥세상의 대상이나 대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다. 내면의 독백도, 마음의 통제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멈추는 일이 없다. 마음은 영혼의 미약한 신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 생각만을 권의적인 목소리로 끊임없이 되뇌인다. 마음은 ‘사고할’ 때, 물질화된 섹터의 가시적인 대상들을 그 성질에 따라 분류하여 범주화한다. 달리 말해서, 마음은 사람들 사이에 보편화되어 있는 ‘이름;의 도움을 받아서 사고한다. 즉, 상징기호, 언어, 개념, 도식, 규칙 등이 그것이다. 마음은 모든 정보를 적절한 이름표가 붙은 서류함에 집어 넣으려 애쓴다. 세상 만물에는 이름과 꼬리표가 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 가능태 흐름 –
이쯤에서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화두를 띄워보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지난 몇주 간에 걸쳐 펜듈럼에 시달렸는데 이제 좀 조용해졌다. 펜듈럼이 조용해진건지 내 마음이 조용해져 펜듈럼이 시비를 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건지… 일상을 살아가면서 좌절과 회생이 끝없이 반복이 된다. 펜듈럼으로 부터 자유로우며 에너지 불균형을 일으키지 않고 생명력을 키우게 되면 트랜서핑 원리 내에서는 비교적 적극적인 행동, 의도가 살아날 것이다.
생명력을 높이기 위해 길을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관통하는 자유 에너지를 상상하는데 그동안 별 진전을 못보다가 며칠새 미세하게나마 느낌이 강해진 것 같다.
잉여 포텐셜의 짐을 벗어던지고 펜듈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당신은 이전에 쓸모없이 낭비했던 에너지를 상당히 회수했다. 하지만 에너지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인체 내의 에너지는 두 가지 형태로 구별할 수 있다. – 생리적 에너지와 자유 에너지(Free energy)가 그것이다. 생리적 에너지는 음식물을 소화시켜서 얻는다. 자유 에너지는 인체를 통해 흐르는 우주의 에너지(Space energy)다. 이 두 가지 에너지가 우리를 감싸는 에너지 보호막을 형성한다. 인간의 에너지는 육체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또한 주변 공간으로도 방사되고 있다.
우주의 에너지는 공간 속에 무한히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에너지의 아주 작은 일부 밖에 받아 들이지 못한다. 우주의 에너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인체를 통해 흐른다. 첫째 흐름은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며, 남성은 척추 앞 1인치, 여성은 척추 앞 2인치 지점을 흐른다. 둘째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거의 척추를 따라 흐른다. 사람이 지닌 자유 에너지의 양은 이 중앙 에너지 통로의 폭에 비례한다. 통로가 넓을수록 에너지가 많이 흐른다…
인간의 생명력은 신체 근육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긴장된 근육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흐름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어렵게 만들고. 인체 에너지 장의 발산을 방해한다. 긴장은 전체 에너지 장에 불균형을 일으킴으로써 균형력(균형을 잡는 힘)을 발생시킨다. 에너지를 평균 수준에 이를 때까지 감소시키는 방법이나, 발생된 포텐셜을 반대 극성의 에너지로 상쇄시키는 방법을 통해 균형을 복구시킬 수 있다. 예컨데 위의 경우, 친구들이 지나치게 경직된 그를 농담으로 놀려 주는 등으로 말이다.
사람의 실질적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자유 에너지이다. 당신이 만일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 에너지가 부족함을 뜻한다. 에너지가 부족할 때는 습관적인 일은 억지로라도 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떠맡는 것은 어렵다. 적극적으로 즐기면서 하는 일의 배후에는 의도가 있다. 자유 에너지가 없으면 의도도 있을 수 없다. 생리적 에너지는 엄밀히 말해서 행위를 하는데 쓰인다. 우리가 주로 관심을 기울일 것은 의도의 형성에 쓰이는 에너지로서, 의도 에너지다. 바로 이 의도 에너지 덕분에 우리는 가지기로, 그리고 행동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 컴퓨터의 그래픽 드라이버가 망가져 오늘 아침 출근 전 새 걸로 교체하고 드라이버를 찾아 설치를 하려는데 설치가 안된다. 며칠째 게임을 못하고 있는 아들놈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과 출근 시간에 쫒기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한 마음이 서로 다투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바로 이어서 요즘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여러가지 불만, 분노, 우울 등 火의 감정이 꼬리를 물고 난무를 한다. 지하철 출근길 내내 나를 사로잡고 있는 짜증, 불만 등에 대해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생각을 했다. 잠이 든 지켜보는 자를 깨우며…
대흠.
중요성에는 두 가지 형태, 곧 내적 중요성과 외적 중요성이 있다. 내적 중요성, 즉 개인적 중요성이란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내적 중요성의 공식은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또는 “나는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자부심이 정도를 지나치면 균형력이 나서서 작용을 시작하고, ‘거만한 공작새’는 코를 다치고 만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일이 쓸모가 없어지거나 아주 엉망이 되어 버리면 좌절을 맛볼 것이다. 그런데 콧대를 세우고 거만을 떠는 것은 동전의 한쪽 면일 뿐이다. 동전의 다른 면이 있다. 자신의 장점을 과소평가하고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 그 다른 면이다.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당신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알다시피 두 경우 다 잉여포텐셜의 양은 똑같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 방향이다. 하나는 긍정적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이다.세상의 사건과 대상들에 중요성을 크게 부여하는 사람은 외적 중요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외적 중요성의 공식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나에게는 이런 저런 것들이 중요해.” 혹은 “나에게는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 그래서 잉여포텐셜이 창조되고,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만다. … 모든 불균형한 감정이나 반응들 – 분노, 불만족, 짜증, 근심, 거겅, 우울, 공포, 절망, 두려움, 연민, 집착, 감탄, 과장된 애정, 이상화, 숭배, 환희, 실망, 자부심, 오만함, 경멸, 혐오, 원한 등등, 이 모두가 중요성이 이런 저런 형태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 속이나 외부세계에 있는 어떤 설질, 대상 혹은 사건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할 때만 잉여포텐셜이 만들어진다. …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꼭두각시 인형의 줄이 기억나는가?펜듈럼은 당신의 감정과 반응에 줄을 매달고 있다. – 두려움, 근심, 증오, 사랑, 숭배, 의무감, 죄책감 등등. 알다시피 이 모두가 지나친 중요성의 소산이다. 말 그대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당신 앞에 어떤 대상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에너지 차원에서 그 대상은 중립적이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당신은 그 대상에 접근해서 그것을 당신의 중요성의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옆으로 물러나서 그것을 바라보며 숨 막힐 듯 경탄을 내뱉는다. 이제 당신은 펜듈럼에게 에너지를 바칠 준비가 된 것이다. 당신에게 갈고리를 걸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린 당나귀는 당근을 뒤쫓으면서 주인에게 복종하여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중요성은 바로 그 당근과 같은 것이다. 펜듈럼은 이 당근으로 당신의 주파수를 포획해서 당신의 에너지를 빨아먹으며 당신을 마음대로 끌고 다닐 것이다.그러니까 세상과 조화롭게 지내고 펜듈럼에게서 벗어나려면 과도한 중요성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당신이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해 얼마맡큼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늘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당신 내면의 지켜보는 자는 잠들어서는 안된다. 중요성이 줄어들면 당신은 이내 균형 상태에 들어가고, 펜듈럼이 당신을 지배할 수 없게 된다. 텅 비어 있는 것을 갈고리로 걸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이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모두가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결코 모든 감정을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의 강도르르 낮추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아니다. 어짜됐든 감정을 대적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는데 마음을 억누르고 태연한 척 하면 잉여포텐셜은 더욱 커진다. 감정은 태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당신은 먼저 태도를 바꿔야 한다. 느낌과 감정은 결과물일 뿐이다. 감정은 단 하나의 원인 – 중요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크고 작은 여러가지 펜듈럼들이 카르마와 같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복잡계 속에서 펜듈럼에 에너지를 빼앗기며 허우적 대고 산다.
지난 1,2 주간 – 바로 오늘 아침 출근길까지도 -나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펜듈럼들의 갈고리에 걸려 이리저리 휘둘리며 지냈다. 주변 상황에 대한 분노와 함께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펜듈럼의 공격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트랜서핑의 방법들 조차도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그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다.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자유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