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Light Sleep) 속에 빠져

차안에서 잠이 들어 비몽사몽간에 영어 노래를 듣는데 가사가 선명하게 들린다. 깨고나니 뭘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알파상태를 명료하게 유지한다면 기억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여기다가 살을 붙여 영어 리스닝 공부에 응용을 해봐야겠다.

대흠.

바딤 젤란드 (Vadim Zeland)

순서가 좀 바뀌었다. 늦었지만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저자를 소개한다. 별로 말할 것도 없지만… ^^


젤란드 웹사이트

舊 소련의 양자물리학자였고, 이후에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기도 했다. 다중우주 이론을 기반으로 현실변환 기법을 설명한
[리얼리티 트랜서핑]시리즈로 단숨에 러시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본 시리즈의 번역 출간이 진행되고
있으나, 유명세를 원하지 않는 탓에 저자의 개인적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책에 소개된 개념들이 신비주의
교의들과도 통하는 바가 있어 ‘현대의 신비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출처 : 인터파크

잉여 포텐셜과 균형력 – 죄책감

‘책 1권 러시아 물리학자 시크릿 노트’에서 발췌

죄책감은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잉여 포텐셜이다. 자연에는 선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력에게는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 지면 모든 경우에 균형은 복구된다. 나쁜 짓을 했을 때, 당신은 자신의 행위가 어떤 짓인지를 알므로 죄책감을 느낀다. (“난 벌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 진다. 좋은 일을 하면 그 행의의 의미를 알므로 자부심을 느낀다. (“난 상을 받아야 해”) 그래서 잉여 포텐셜이 만들어진다. 균형력에게는 누가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 혹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등의 개념이 없다. 균형력은 단지 에너지장에 일어난 부조화만을 제거한다.


佛家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善業(선업)이라 하고 나쁜 일을 하는 것은 惡業(악업)이라 한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보답이
오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보답을 받는다고 하지만 업을 짓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동등한 행위로 본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바딤
젤란드는 선업과 악업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는 주목하지 않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에너지적 관점에서 그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본다.
우리는 막연히 보상 등의 물질적 개념 등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좋은 일 나쁜 일에 대해 차별을 두는 성향이 의식 깊숙히 뿌리 박혀 있는 것 같다.

대흠.

‘책 1권 러시아 물리학자 시크릿 노트’에서 발췌

러시아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뻔뻔스러움은 둘째가는 행복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균형력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둔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무뢰한들을 벌해주시기를 바란다. 정의가 승리하고 악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슬프게도, 자연은 정의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끝없는 불행에
시달리는 것은 죄책감을 타고난 착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후안무치한 냉혈인간들은 벌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종종 ‘노력’의 대가로
성공을 누린다.

우리는 주변에서 “하늘이시여 왜 이리도 불공평하신가요? “하는 원망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아마도 그런 모든 것들이 자연의 이러한 냉정함과 무심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마음-영혼-환생-우주에 걸치는 인과관계 전체를 아우르는 눈으로 볼 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에너지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개인의 성공에 촛점을 맞춰 본다면 위와 같은 논리가 성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흠.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Silva Ultra Mind ESP 책을 infinitesp님으로 부터 얻어서 보다가 잃어 버리는 바람에 다시 구매하려고 기회를 보던 중, 미국 사는 매제가 회사로 물건을 보낼 일이 생겨 함께 부쳐달라고 아마존에서 매제 집으로 책 주문을 했다.  그런데 책값보다 shipping & handling fee가 더 많이 나온다. 사는 김에 2 달러 짜리 헌책을 한권 더 주문했는데 각각의 책에 배송료가 부과된다. 미국내 배송인데 책값이 반, 배송료가 반이다. 우리나라보다 땅덩어리가 훨씬 넓으니 배송 비용이 많이 드는 건 당연하겠다. 그런데 비용을 책마다 부과하는 건 좀 아니다 싶다.
미국 동부에서 의류 체인을 하는 매제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미국 경기에 대해 잠깐 물었다. 회복 기미가 안보인다고 그런다. 내가 주문한 책을 배송 처리하는 데도 미국에 사는 서민들의 손길이 갈 것이고 비록 작은 돈이지만 미국에 일자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불만은 없다.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Better Place to Live)’는 실바 마인드컨트롤의 목적도, 나라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이롭게 하자는 조상의 ‘홍익인간’ 정신도 다 같은 이야기을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국경과 혈통을 떠나서 자기 보다 못한 이들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인류의 후손들에게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대흠.

바딤 젤란드와 나

아마도 그 전환점은 내가 삶에서 극도로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던 때인 것 같아요. 내가 25년 전에 나의 책 “트랜서핑”을 읽었더라면, 내 삶은 훨씬 더 평온하고 바람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아마 이 책을 쓸 수 없었겠지요… 그 모든 시련 끝에 어떤 채널이 열렸고, 그 통로를 통해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평생 나는 반(反) -트랜서핑을 해왔어요. 트랜서핑과는 반대로 해왔다는 거죠.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보고 배우지만, 바보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배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바보였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와 남의 실수 중, 어느 것에서 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영리한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만 알지요. 달리 말하자면, 영리한 사람은 정보만 알고 있을뿐, 그것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와 달리 바보는 부딪혀 머리에 혹이 날 때마다 거기에서 실수의 핵심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지요. 오직 바보만이 신비지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에서 발췌-

이것은 의미있는 우연의 일치이거나 아니면 내가 바딤 젤란드와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하나의 잉여 포텐셜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나도 지난 25년 간의 직장 생활 속에서 트랜서핑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다. 나 역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많은 펜듈럼들과 전쟁을 벌여왔다. 그 가운데는 스스로 만든 잉여 포텐셜로 인해 균형력의 제어를 받았던 적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바딤 젤란드가 위에서 한 말처럼 바보처럼 스스로 부딪혀 얻은 많은 혹들을 머리에 가지고 있고 그것이 삶의 교훈이 되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난 25년간 나를 괴롭혀온 펜듈럼들에게 원망의 마음은 전혀 없다. 거기에는 어떤 합리, 논리 등의 이유를 붙일 수 없다. 그 모두 내 자신이 불러들인 펜듈럼들이고 내가 그것들에 동조를 한 결과이기 때문에 …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지금 나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반면에 지금 알고 있는 트랜서핑 같은 지식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나의 이러한 경험이 타인을 위한 것이 될 가능성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대흠.

가만히 있으면 팔자(八字)대로 간다?

사주팔자에서 팔자(八字)를 사람들은 보통 ‘타고난 운수’란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주말 동안에 쏟아냈던 부정적인 말들을 생각하며 “이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데..”란 자책을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나의 사주팔자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쌓여온 관념의 관성은 부정적인 방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합리 혹은 논리의
이름 하에 당위성을 가질지언정 나의 성공적인 미래하고는 전혀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불만을 갖거나 남을 경멸하거나 하는 행위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리고 잉여포텐셜은 자연의 균형을 깨는 잉여 에너지이므로 자연의 균형을 조절하는 힘(균형력)은 이를 제거해버리는데 그 과정에서 그 행위의 당사자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한다. 왜냐하면 無心한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 방법이 가장 자연스럽고 쉽기 때문이다.

오늘 출근길 운전하면서 주말에 만들어낸 잉여 포텐셜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잉여포텐셜은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한 만큼 삶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틀어 놓았음이 분명하단 생각이다.
 
팔자대로 가지 않으려면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를 부지런히 깨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