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CEO교회 김종춘 목사의 CEO 인사이트

교회 목사들의 얘기는 귀담아 듣지 않는데 이 분의 성공 비지니스 스토리텔링은 예외다.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비지니스 감각도 뛰어나면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심을 가진 분인 것 같다. 살림살이를 빼 놓은 신앙은 영지주의에 빠진다며 경계를 한다.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만…이건 나중에 좀 더 생각해 볼 문제)

요즘 비지니스계에서 자주 언급하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 경영’, 신앙도 수행도 지속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살림살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김종춘 목사가 보내는 뉴스레터에서는 성경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성공을 위한 태도,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비법들을 다 만들어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 ^^

믿는 자에 복이 있나니…

대흠.

안 된다고 믿든지, 된다고 믿든지 둘 다 맞다. 믿는 그대로 된다. 교통사고가 날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면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난다. 예감이 적중한 게 아니다. 그런 느낌의 반복이 그런 길을 만들어 안내했을 뿐이다. 흉한 생각, 느낌, 말이 계속 반복되면 큰 일이다. 그런 길이 만들어지고 거기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생각, 느낌, 말은 길을 만들고 길잡이가 된다. 그렇기에 말을 할라치면 더 좋은 쪽으로 말해야 한다. 

“우울한, 울적한, 고독한, 낙심되는, 절망스러운, 침체된, 피곤한, 불안한, 두려운, 겁나는, 걱정되는, 짜증나는, 화나는, 실망스러운, 불쾌한, 창피한, 고통스러운…” 이런 말이 이런 감정, 행동, 현실을 초래한다. “눈부신, 황홀한, 환상적인, 매혹적인, 끝내주는, 죽여주는, 굉장한, 대단한, 특출한, 짜릿한, 고결한, 훌륭한…” 앤서니 라빈스에 따르면 말을 바꾸면 감정도, 행동도, 현실도 바뀐다.

“인생은 막 쪄낸 빵이 가득한 바구니이다. 아니다. 인생은 깊은 수렁이다.” “인생은 놀이이고 춤이다. 아니다. 인생은 노동이고 전쟁이다.” “깃털처럼 가볍고 종달새처럼 즐겁다. 아니다. 세상의 짐을 다 멘 것 같고 암담하기 그지없다.” “지금의 고난이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아니다. 단지 지금이 겨울일 뿐이다. 머잖아 봄이 올 것이다.” 나는 어떤가.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면 감정도 바뀌고 현실도 바뀐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고무줄을 아무리 세게 당겨 늘어뜨려도 그 고무줄의 탄력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아예 고무줄을 끊어 그 고무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현재의 상태를 타파해야 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IT업계가 요즘 더욱 흔들린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 큰 기회가 다시 오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회가 매년 20만 명씩 감소한다는 것은 새로운 교회모델이 등장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8월 28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광적인 집단최면 현상을 하나님의 능력체험 또는 천국체험이라고 속이며 악용하고 착취하는 사례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일부 목회자들에게서 자행돼 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섬뜩하게 들었다.

사이비 신앙이나 이단 신앙은 최면과 종속과 착취를 초래하게 되고 건전한 신앙은 자율과 성장과 성숙으로 이끈다. 정신이 빛나지 않는 신앙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니다. 목회자나 성도가 어느 정도 정신분석학 또는 심층심리학을 알고 있지 않으면 저질의 집단최면 현상을 신령한 능력체험으로 오해하거나 곡해하게 된다. 

정치인의 수준이 높아지려면 필연적으로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 저질의 정치인이 걸러져야 하듯이 목회자의 수준이 높아지려면 성도의 수준이 높아져야만 한다.

내가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강렬한 반복이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목표의 설정, 효과적인 전략의 채택, 그리고 더 나은 반복의 지속이 성취를 낳는다. 강렬한 실행의 반복 외에는 왕도가 없다. 실행하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하고 실행하면 성취한다. 강렬하게 실행하면 크게 성취하고 강렬하게 반복해서 실행하면 위대하게 성취한다. 

우리는 왜 그토록 ‘베낀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일까. 우리의 존재 자체가 베낌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조부모와 부모의 베낌이다. 베낌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자기다움을 추구할 때, 남다른 창조가 일어난다. [베끼고 훔치고 창조하라](매일경제신문사) http://bit.ly/hTh1I4


1인기업 서포터즈 김종춘 목사의 뉴스레터 중에서

성공을 위한 영적인 연금술

사람마다 시간과 공간의 인연이 달라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르겠지만 저는 아래 글이 호세 실바 박사의 마인드컨트롤과 고대 신비지식에 뿌리를 둔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핵심을 관통하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장미십자회 원리는 영지주의(靈知主意) 혹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네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흘깃 보았던 그노시스 학파를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

대흠.

 

출처: 미내사, 성공을 위한 영적인 연금술

이 글은 <Rosicrucian Principles for Home and Business> (가정과 사업에 있어서 장미십자회원의 원리)라는 책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저자 스펜서 루이스 박사는 <예수의 신비한 생애>, (대 피라밋의 상징적 예언> <생명 사이클과 자신을 마스터 하기> 등 수 많은 책을 썼습니다.1939년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그는 장미십자회(AMORC)의 대표였으며, 여러 해 동안 신비주의와 철학도들을 매료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기업과 조직들의 말없는 ‘말 없는 파트너’였고 조언자였으며, 세속적인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꿈에 집중하는 것’과 ‘꿈을 성취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너무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 (편집자 주)

심리학의 원리를 일상 생활에 적용하고자 할 때 서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소위 ‘집중기술’이라 불리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의 단순성에 깊이를 더해 주는 대중 강연자들의 강연을 들어 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필요’에 따라 그들이 집중하면 어떤 마술적 과정이 작동하기 시작하여 바라던 것이 물질화 되는 것이라 믿는다.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언제 어떻게 그것에 집중하는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기술’을 가르치는 강연자나 교사는 모두 각기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꿈이나 희망에 집중하는 것은 그 꿈이나 희망을 성취시키는데 집중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의 집중이 유익한 것이 되기 전에 반드시 이해하고 사용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정신 연금술이다, 과거에 장미십자회원들은 아주 탁월한 연금술가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쓸모없는 것들로부터 순수한 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면서 또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었다. 또한 장미십자회원들의 기술은 보편적인 가르침과 지식으로 학생들과 숙련가들로 하여금 정신 연금술을 사용하여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알려져 왔다. 그들은 실제로 도가니를 사용하여 물리적 연금술에 뛰어난 것처럼 정신 연금술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모든 생물체 중에서 인간만이 신의 의식의 일부인 창조력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 인간은 독특한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을 함으로써 결국에는 물질적 형태로 창조할 수 있는 진귀한 특권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정신으로 생각하고 정신으로 창조하는 과정에 있어 인간은 어는 정도까지 신과 동등하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하는 창조력을 인간이 사용하는 것은 신이 부여한 특권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서양 세계에서는 정신으로 창조하는 기술이 거의 이해되지 못했었다. 예외적으로 이 땅의 하얀 마술사(White magician)로 불리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것을 실행하고있다. 그들이 ‘하얀 마술사들’이라고 일컬어 지는 이유는 그들이 행하는 마술이 하얀 마술이며, 어떤 파괴적인 면도 없는 순수한 마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사용하는 능력은 신의 의식이 갖는 창조력의 일부이며, 이 창조력은 어떤 악이나 파괴적인 것을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미개하거나 진화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은 아마 파괴적인 일들을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들을 정신적으로 창조하거나 물질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이 신비한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다. 우주의 힘에 의해, 선하고 건설적인 일들이 마음 속에서 창조되었을 때만 물질의 형태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신비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그것이 물질의 형태로 나타나기를 마음으로부터 바라면, 매우 거친 물질적인 요소들을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부자연스런 관계로 만들어 악한 물질 형태로 나타나게 해야 하므로 애써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선하고 건설적인 일을 생각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연금술 과정에 의해서 정신으로 그것을 자연스레 창조하게 된다. 이 과정은 우주의 연금술 과정과 일치하므로 결국 그가 정신으로 창조한 것은 조만간 자신의 의식과 존재 안에 있는 창조적 과정에 의해 외형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환경이 나아지고 필요한 것을 갖기를 원하거나, 어떤 유익한 소유물을 얻고 싶어하는 원하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해서 창조해야 한다. 매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생각을 통해 창조 과정에 들어가, 자신의 의식 속에서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이 되고, 진동을 일으킬 때까지 계속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소망이 너무 실제적인 것이 되어서 그것이 없는 곳이 없고, 너무나 그 존재가 유력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삶이 바뀌고 통제되며 명령을 받고 영향을 받을 만큼 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신으로 창조된 것은 더 이상 마음 속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눈을 감고도 분명히 볼 수 있고, 마음이 이완되었을 때는 자신의 전 존재를 사로 잡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형태, 색채, 크기, 무게, 힘, 이 모든 형태로 현존하게 된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이 세계로 태어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은 아이와 같다.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은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먼저 상상된 것이었다. 이 땅에 물질로 존재하면서 인간에게 축복이 되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모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전에 우주적 차원에서 연금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인간은 이 우주의 과정과 신의 설계를 본받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인간도 성숙해지는 발전의 과정 없이는 자신이 상상한 것을 물질화해 낼 수 없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사업상 만난 사람들, 회사, 이사회, 사단법인들 가운데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그들의 훌륭한 계획과 중요한 문제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예들을 보면 그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을 처음부터 올바로 생각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관된 관계를 갖지 못했거나, 본질상 중요하지 않은 씨앗, 또는 진동이 조화롭지 못하거나, 선하지 못한 생각의 씨앗은 온전한 개념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그 생각에 생명력을 불어 넣지도 못한다. 그리고 온전하고 다소 모든 조건들이 완벽하더라도 그 생각이 살아서 진동하는 형태를 갖추어 마지막으로 표현되기 위해서 필요한 올바른 수태 기간과 논리적이고 자연스런 발달 과정이 없으면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마음의 이미지들 모두가, 형태를 갖추고 주위를 활보하여 자신을 노예로 만들지 않고, 상반된 두 개념으로 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주의를 기울여서 신성한 의식에 있는 정신 실험실 내에서 통합하고 발전된 것들만 존재할 수 있게 되고, 구체적으로 물질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요소가 필요하고 적절한 발전과 성숙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인내력 없는 인간은 성급하게 되고 자신의 꿈과 욕망을 성취시키기 위한 더 빠르고 쉬운 길을 찾는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은 틀림없이 실패하게 되고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믿음과 신뢰심을 잃어 버리며 내부에 존재하는 창조력을 거짓말쟁이로 몰아 내쫓아 버린다.

인간이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무엇이든지 상세하게 시각화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기능들을 집중하고 의지력을 외적 자아로 부터 내면으로 방향 전환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마치 인간 의식 내부에는 바라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창조하는데 필요한 밀실이 있는 것 같다.

조금씩, 한 부분씩, 요소 별로 결합되어 시각적 형태로 나타나야 하며 각각의 발달 단계를 거친 후에는 검토하고 시험하고 마무리해서 간과한 요소가 있는지, 빠진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수정을 해야 할지, 부분과 요소를 잘못 결합하였는지 알아 보아야 한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가며 벽을 세워서 집을 짓듯이 우리가 바라는 것의 모든 부분들도 정신으로 창조하면 시각화 되어 결국에는 완벽한 상태로 태어날 준비를 마치게 된다. 그렇게 창조자의 의식 속에 실제로 존재하면서 그의 소유물이 되어야 한다.

그 욕망과 관련된 어떠한 세세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라는 것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것을 마음에 간직하여야 한다.. 실제로 쓸모 없는 것과 누구에게도 이익이나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을 창조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연금술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당하는 위험을 고려해서 창조하는 동안 대비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이익을 포함시켜야 하며 그런 식으로 창조된다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훌륭하게 창조되거나 훌륭한 본질을 갖게 되면 드디어 객관적인 형태를 갖추어 나타나게 되고 행복과 평화, 건강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만족에 전혀 부담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도, 슬프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일이 필요한 만큼 이기심 없이 바래야 한다. 바라는 것을 소유하려는 동기가 복수나 분노, 증오심이나 질투심, 자만이나 교만 같은 것들과 관련되어서도 안 된다. 욕망이 창조자의 의식 속에서 발전하여 실체가 되는 과정은 때때로 겸손함과 소박함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인간의 창조력이 형태를 갖추고 나타날 때는 그 창조자로 하여금 신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신의 왕국과 조율해야 함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하고 그 과정의 일부가 되면 성공과 만족할 만한 현실이 바로 내 안에 있고 확실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펜듈럼(Pendulum) 이란?

펜듈럼이란 일반적인 용어로 ‘시계 따의의 진자나 흔를리는 추’를 의미하나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는 말하는 에너지 펜듈럼은 다음과 같이 정의 된다.

어떤 집단의 생각이 한 방향으로 초점 맞추어 지고, 그 결과로 각자의 사념(思念) 에너지의 매개변수가 동일해질 때 하나의 구조체가 생겨난다. 개개인의 사념 에너지는 합쳐져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그리하여 이 에너지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정보에 기반을 둔 하나의 독자적인 에너지 펜듈럼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 구조체는 독자적인 생애를 시작하고, 그 창조에 참여한 사람들을 자신의 법칙에 복종시킨다…

모든 펜듈럼은 그 지지자들로 부터 에너지를 얻어서는 그 위에 군림하므로, 그 본질이 파괴적이다. 펜듈럼의 파괴성은 그것이 지지자 개개인의 운명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펜듈럼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진다. 그것은 지지자 개개인으로부터 에너지가 끊임없이 흘러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지자들에게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는 펜듈럼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떤 시스템의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은 그 시스템의 법칙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스템은 그를 실컷 씹고 나서 뱉을 것이다. 파괴적인 펜듈럼의 영향 아래 놓이면 하루아침에 인생을 망친다. 상실의 고통없이 거기서 빠져 나오기란 대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 P49,50,51


펜듈럼의 정의에 대해 대략 기술을 했으니 이제 부터는 펜듈럼에 대한 사례를 고찰해 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펜듈럼으로 부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가? 그런 에너지를 성공의 물결로 갈아타는 트랜서핑에 사용했었다면 인생은 어떻게 바뀔 수 있겠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대흠.

채팅 중에 문득 …

 oo님의 말:
 아~ 장이사님 이시구나?
 ㅋㅋ
better and better님의 말:
 ㅋㅋ
oo님의 말:
 난 또 누구신가~?ㅋ
better and better님의 말:
 사진 겁나넹 ^^
00님의 말:
 ggg
 gg
 ㅎㅎ요즘 유행하는 게임의 캐릭터죠~
 저랑 딱 맞는..
better and better님의 말:
 오~ 아닌뎅
oo님의 말:
 기어즈 오브 워2
 ㅎㅎㅎ
better and better님의 말:
 난 게임은 당채 몰러
강철님의 말:
 ㅎㅎㅎ
better and better님의 말:
 근데
 누가 oo씨를 이용하ㅕ하는가?
oo님의 말:
 ㅎㅎㅎㅎ
 세상이 저를 가만히 두질 않네요~~
better and better님의 말:
 혹시 회사는 아니겠지?
강철님의 말:
 ㅎㅎㅎ
 딱히 어딜 지칭하는건 아니지만.
 음~
 뭐랄까~~~
better and better님의 말:
 말을 바꿔바요
 내가 세상을 이용하도록…
강철님의 말:
 ㅎㅎㅎㅎ
better and better님의 말:
 난 지금 하느님도 이용하려는 판에..^^
강철님의 말:
 ㅎㅎ
 언젠가는 저도 그럴날이.
better and better님의 말:
 성공하려면 그 분을 잘 이용해야 ㅋㅋ
강철님의 말:
 ㅎㅎㅎ

우리 회사 한 직원과 채팅한 내용인데…
아무 생각없이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말이 되네요.
‘성공을 위해서 하느님을 잘 이용하자!’ ^^


전지전능하신분이니까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겁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주실 준비도 되어 있을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걸 모를 뿐…


대흠.

영국일기(8) – 졸린 눈을 비비며…

식구들은 잠들고 지금은 글을 올릴 마음은 아닌데 연재를 하다보니 의무감 비슷한 게 발동하네요.

가족들과 이곳 영국에 살림을 차린 지가 일주일이 다 되어 갑니다. 외로움이 사라진 대신 다른 사소한 걱정거리들이 생기네요. 별 것들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큰 애의 지루함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은근히 신경이 쓰입니다. 쓰지않는 노트북을 회사에서 빌려와 인터넷으로 친구들과 채팅을 하긴 하지만 하루가 아마 무척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거라 생각합니다. 천안에 있으면 학교갔다 돌아 와서 컴가지고 좀 놀다 학원가고 밤이 늦어서야 집에 오는 바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조용한 영국의 시골 동네에 친구도 없이 동생들이 있긴 하지만 하루종일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

그래서 딸 아이에게 ‘여기 놀러 온게 아니라 여러가지 배우러 온 거야. 이런 지루한 생활을 참아내는 것도 중요한 거란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딸아이도 금촉(禁觸)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죠.

반면에 막내(4살)와 둘째 딸(8살)은 여기 온 걸 무척 좋아합니다. 집이 2층이라 신기한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하루종일 잘 노네요. 막내는 집에 갈때 계단을 갖고 가자고 합니다 ^^.

여기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브라이튼이란 남쪽 해안도시에 직장동료가 머물고 있는데 그저께는 거기에 있는 한국 수퍼에서 김치,우리 쌀,된장,깻잎,참기름,간장,만두등을 사왔습니다. 신김치에 흰쌀밥만 먹어도 어떤 고급 요리 부럽지 않습니다. 호박에 풋고추 그리고 공장에서 나온 된장을 풀어 끊인 된장국도 좋고요. 이제 배가 슬슬 다시 나오려 하는 것 같네요.

이번주 일요일은 브라이튼의 동료와 우리 가족이 윈저성이란 곳으로 놀러갑니다. 김밥 싸가지고서… 우리 가족들이나 저나 한 주간의 묵은 상념들을 털어내고 좋은 시간을 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제 회사의 차장 한사람이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전직원들한테 메일을 띄웠는데 첨부된 시가 가슴에 와 닿네요.

– 성 공 –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며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평의 정원을 가꾸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2002.10.12

*^^*————————————————
어제는 임원중 한 분이 회사를 떠나 송별식에 참석했습니다. 1차가 끝나고 2차는 맥주집, 그런데 젊은 직원들이 바람을 잡아 3차로 나이트클럽까지 갔습니다.

5개월 만에 돌아온 천안은 또 여기저기가 변해 있더군요. 한적했던 곳인데 거기 나이트 클럽이 들어서며 그에 죽이 맞는 여러가지 시설들(여관,포장마차등등)이 들어서고 있네요.  

여러 해 전에는 영국의 IT Manager 아닐 파텔이 일년에 한번 정도 천안을 방문하곤 했는데 올때마다 바뀌는 도시를 보며 놀랍 다고 하더군요.  영국같은 선진국은 이미 모든 게 안정이 되어 거의 변화가 없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으면서 급격한 변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그 친구의 놀라움이란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함도 생깁니다.

2차만 하고 집에 가려했는데 잘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그게 쉽지 않지요.  아무튼 오랜만에 지극히 한국적인(?) 놀이문화의 맛을 봤습니다.

춤맹이지만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나이트 클럽의 라이브밴드의 연주를 감상하고  현란한 싸이키 조명아래 춤추는 남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단지 제일 싫은 건 같이 간 사람들이 그런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것.

台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