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 속에도 道에 이르는 길이 있다
요즘 제품 매뉴얼을 만드는데 …
매뉴얼이란게 없으면 문제가 되고
잘 만들어야 봐야 본전이고
부실하면 제품에 흠이 되고
그러나…
정성을 들이다 보니
이 속에서 뭔가를 본다.
제품 속에 스며든 프로세스를 재조명해 본다.
에브리바디 모두 큰 것을 바라 본다.
그러나 정작 진실은 작고도 사소한 데 있다.
대흠.
요즘 제품 매뉴얼을 만드는데 …
매뉴얼이란게 없으면 문제가 되고
잘 만들어야 봐야 본전이고
부실하면 제품에 흠이 되고
그러나…
정성을 들이다 보니
이 속에서 뭔가를 본다.
제품 속에 스며든 프로세스를 재조명해 본다.
에브리바디 모두 큰 것을 바라 본다.
그러나 정작 진실은 작고도 사소한 데 있다.
대흠.
주말 근무중.
일을 즐기면 일이 놀이가 되고
일하다가 잠이 들면 휴식이 되고
일하다가 잠시 딴 짓거리를 하면 그것도 놀이고
쉬거나 놀다가 일 생각이 나면 일이 되고 ^^
단지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일에 몰입이 되어 일하는 자가 사라지는 상태가
일과 놀이와 휴식이 합일이 되는 상태.
그런 명상적 상태는 아니고…
대흠.
입찰 때문에 전라도 광주에 있는데 시간이 남아 PC방에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멀더님의 오컬트연구소에 글이 올라 왔군요.
요즘 읽고 있는 마이클 뉴튼 박사의 <영혼들의 여행>이란 책과 함께 육신의 삶과 영혼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일깨웁니다. 이 책은 영혼의 세계에 대한 정말 좋은 책, 아니 보고서라 생각합니다.
대흠.
멀더님 포스트 일부를 아래 인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당신도 고통을 느끼냐는 지구인 과학자의 질문에 외계인은 이런 대답을 합니다.
“느낀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이 느끼는 것이다.”
오오~ 완벽한 비파싸나(바라보기 명상)입니다.
마취없이 손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신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나
역시 마취없이 팔 절제 수술을 받은 라마나 마하리쉬 선생의 수준입니다.
이 몸이 진정한 나(진아)가 아님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엄청난 수준의 존재입니다.
또 이런 장면도 나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제일 짜증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흑인 꼬마애가 외계인에게 자신의 죽은 아버지를 되살려 달라고 뗑깡을 피웁니다.
그러자 외계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아이를 위로합니다.
“죽는다고 진짜 죽는게 아니다. 그것은 몸의 죽음일 뿐 우주 어디에선가 다른 형태로 살아 숨쉬고 있다…
벅샷님은 언제 이리도 어려운 책을 소화하시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생명나무,분화 등을 이야기하시니 또 생뚱맞은 한 생각을 더하게 되네요. ^^ 저는 프랙탈로 대표되는 현상을 ‘닮은 우주’라 이름지어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닮은 우주의 소화두가 될 수 있는 가설을 세워 보자면 “사물의 분화가 일어날 때는 닮은 우주의 법칙(뭔지는 모르지만)이 적용된다.”
이 화두를 깨치면 비지니스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통찰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흠.
PS. 요즘 벅샷님한테 코드를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생각이 한 발짝 나아가기는 하나 좀 오버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시고 부족하다면 양해를 바랍니다. ^^
컨텐츠를 생산할 여건이 안되는데 포스팅 욕심은 일어나고… ^^
오컬트 연구소 소장이신 멀더님 글을 링크합니다.
이삼십년 전에 소태산 대종사님에 대한 글을 선사상이란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대흠.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었다
인생을 바뀌게 하는 이상한 만화책
소태산 대종사께서 불법을 연구하시어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원불교를 창건하신지도 100여년이 지났다. 기존의 불교는 너무나 방대하고 격식이 복잡하기 때문에 보다 더 생활 속에 밀착된 교리로써 재탄생한 것이 원불교인데 그렇게 본다면 원불교는 기존의 수 많은 불교 경전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속버스를 탔다.
도심에서 벗어나 고속도로 초입에 들어서자 푸르고 나즈막한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타면서 늘 느끼는 것은 승용차 보다 좌석이 많이 높아 자주 다니는 길인데도
보이는 바깥 풍경이 사뭇 다르다.
한 순간 희미하게나마 산세가 느껴졌다.
잘 하면 풍수에 대해 한 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 동안 일과 피로에 범벅이 되어 있다가 잠시 해방을 맞은 틈을 타고 느낌이 살아난 것 아닌가 싶다.
돌아오는 길…
표를 사러 광주 터미날의 홀을 서둘러 가로질러 가는데 TV프로 ‘인간 극장’에 동자승이 나온다.
스님들이 오갈데 없는 아이들 일곱명을 머리깎여 자식처럼 키우는 얘기다.
잠시 TV 앞 의자에 앉아 어린 스님들을 보는데…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이 마음 속에 일어난다.
삶에 대한 연민 그리고 탄식 같은 것일게다.
삶… 인연… 영혼의 여정…
버스 안에서는 수요기획 ‘돗돔을 찾아서’란 TV 프로를 봤다.
무지개 너머의 환상을 쫓듯 ‘전설의 大物’이라는 돗돔을 찾는 낚시꾼들…
낚시 바늘에 걸려 낚시꾼에 의해 물속에서 선상으로 끌려나온 물고기는 입에 피를 흘리며 퍼덕인다.
낚시꾼과 물고기의 인연. 어찌 육지 동물인 인간이 바다까지 나가 그것도 심해의 물고기와 그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인연을 맺는걸까?
오늘, 아니 어제 느낌이 살아난 하루였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