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 중에 문득 …

 oo님의 말:
 아~ 장이사님 이시구나?
 ㅋㅋ
better and better님의 말:
 ㅋㅋ
oo님의 말:
 난 또 누구신가~?ㅋ
better and better님의 말:
 사진 겁나넹 ^^
00님의 말:
 ggg
 gg
 ㅎㅎ요즘 유행하는 게임의 캐릭터죠~
 저랑 딱 맞는..
better and better님의 말:
 오~ 아닌뎅
oo님의 말:
 기어즈 오브 워2
 ㅎㅎㅎ
better and better님의 말:
 난 게임은 당채 몰러
강철님의 말:
 ㅎㅎㅎ
better and better님의 말:
 근데
 누가 oo씨를 이용하ㅕ하는가?
oo님의 말:
 ㅎㅎㅎㅎ
 세상이 저를 가만히 두질 않네요~~
better and better님의 말:
 혹시 회사는 아니겠지?
강철님의 말:
 ㅎㅎㅎ
 딱히 어딜 지칭하는건 아니지만.
 음~
 뭐랄까~~~
better and better님의 말:
 말을 바꿔바요
 내가 세상을 이용하도록…
강철님의 말:
 ㅎㅎㅎㅎ
better and better님의 말:
 난 지금 하느님도 이용하려는 판에..^^
강철님의 말:
 ㅎㅎ
 언젠가는 저도 그럴날이.
better and better님의 말:
 성공하려면 그 분을 잘 이용해야 ㅋㅋ
강철님의 말:
 ㅎㅎㅎ

우리 회사 한 직원과 채팅한 내용인데…
아무 생각없이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말이 되네요.
‘성공을 위해서 하느님을 잘 이용하자!’ ^^


전지전능하신분이니까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겁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주실 준비도 되어 있을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걸 모를 뿐…


대흠.

어느 물리학 교수

회사가 모 유명 대학 내에 입주해 있는데 언젠가 그 대학의 한 물리학과 교수님과 술자리에서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물리학자와 대화를 할 기회가 쉽지 않아 기회다 싶어서 내가 줏어 들어 알고 있는 강단 밖의 신과학이랄까 신비학이랄까 아니면 현대물리학의 동향 등… 그런 것들에 대한 짧은 소견을 바탕으로 질문을 드렸는데 넉넉한 인품과 겸손함을 갖춘 교수님은 자신은 그런 것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나름대로 그 개연성은 인정하셨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 자신이 처한 대학의 현실 속에서 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요즘 이 분과 담배 피우러 나가다 자주 마주친다. 간단한 목례만을 나누지만 내 카메라에는 이 분의 행동 거지가 그대로 찍히고 분석이 된다. 그 분의 움직임은 늘상 매우 바쁘고 항상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내가 갖고 있는 물리학자의 피상적인 이미지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내 뇌에 찍힌 영상에 우리나라 대학과 그 안에서 연구를 하는 학자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비지니스맨은 빠르게 움직이고 학자는 천천히 움직인다.

대흠.       

깍쟁이 블로그

그대가 재능이 많은 블로거란 건 아는데 … 그대의 세미나에 참석도 했고 책도 두권이나 샀고 관심도 많아서 사귀어(?) 보고 싶었는데…  사귄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는 두지 않아도 됩니다.

‘코멘트를 남겨 주세요~’ 라고 손님에게 요구만 하지 상대는 하지 않는 그대를 깍쟁이 블로거라 아니 부를 수가 없군요.   시골의사님 처럼 댓글이 수십에서 수백개가 걸리는 블로그도 아니고…

그래도 이 아름다운 계절에 행복하시길…

대흠.

‘노력’이란 것이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다?

다나카 다카아키란 일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있다. ‘속청이 잠자는 뇌를 깨운다’
속청(速聽)이란 빠르게 듣는다는 뜻이다. 빠른 속도로 들음으로써 대뇌의 베르니케 중추를 발달시키고 나아가서는 범화(일본어 단어를 직역한 것으로 보임) 작용을 통해 뇌 전체를 활성화 시킴으로써 뇌력(역시 일본어 단어)을 증강시칸다고 하는 간단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지금 반쯤 읽고 있는데 1만2천원에 작은 그러나 값진 보석을 산 기분이다.

‘No pain no gain’,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라고 하는데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 확실히 무언가를 이루어내고자 할 때, 노력은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렇다면 이 노력에는 ‘고통’도 불가결의 요소일까?”

즐기는 자에게는 노력이 고통이 아닐 것이다.

대흠. 

바람나무님을 위한 트랙백 ^^

Thorn Tree라는 이름으로 하덕규의 가시나무 연주곡이 흘러 나와 잠시 짬을 냅니다.

제 블로그 저 아래 어딘가에 영국일기가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들어 있어 우물 속에서 물을 길어 오든 펌질합니다.  이 노래 80년대인가 나왔을 때 LP 사서 들으며 별 이유도 없이(?) 많이 외로워 했습니다. 
 
하덕규의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고 …’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바람은 인간의 외로움을 자극하나 보다.

하덕규는 강원도 산골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아마도 부모와 떨어져..) 보냈지만 나는 부모와 형제 친구들 속에서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왜 이리 외로움을 잘 타는가 ? 남들도 다 그런가 ? 보통 사람들은 외로움을 애써 피하거나 느끼더라도 잘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