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

2012년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예언들이 솔솔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 미래를 보는 능력자도 아니고 단지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 중 하나라 뭐라 평가는 못하겠습니다. 전에 인터넷 어딘선가 ‘알려진 예언은 실현되지 않는다.’란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네요. 

미내사에서 퍼온 아래 글 참고 바랍니다. 

대흠.


글 – 조지 리사이언스

에드가 케이시의 예언, 그리고 케이시처럼 지구의 미래에 대해 비전이 있는 사람들의 예언–모두가 어떤 큰 재앙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어 있다고 한다–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예언된 일들이 대부분 실지로는 일어나질 않거나, 아니면 크게 좋은 쪽으로 달라진 모양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런 세계적 대재앙을 겪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이론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또 그런 예언을 무턱대고 대중들에게 퍼뜨리는 사람들–대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수단으로 그렇게 하여 공포심을 자아내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공포가 그대로 분노로 바뀌어 발설자에게로 돌아온다–에게 하나의 구원이 될 것이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작가 안젤로 프란체스카의 ‘외계인과 로시크루션’이라는 책의 내용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것은 1978년 10월 22일자 스페인의 신문 ‘Information’에 실린 인터뷰 기사 전문이다.) 1978년 7월 5일 파브로.R 이라는 사람이 한 지방도시(지명은 밝히지 않았음)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시골길(역시 지점은 밝히지 않았음)에서 한 우주선(접시모양이었다고 함)과 마주쳤고, 그 우주선에서 나온 지구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외계인으로 보아야 할 그 사람은 R씨가 높은 도덕성을 지녔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했다. 정치가나 국가의 우두머리들과는 접촉하는 일이 없느냐고 R씨가 묻자, 외계인의 대답은, 그런 일이 있었지만 지구의 정치인들은 도덕성이 최하 수준에 있기 때문에 그런 접촉이 지구에서의 삶의 향상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분야에 걸친 대화에서 영적 세계 및 그밖의 세계의 생명에 대한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이하 ‘문’은 R씨의 질문이고, ‘답’은 외계인의 대답이다.

문 : “우리는 이 세계가 전 지구적인 큰 재난을 격게 된다는 예언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

답 : “시간이라는 요인은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지식은 현실적 및 정신적 현재(시간)에 분명히 알면서 가 닿는 것으로 형성된다. 이것이 앞으로의 일을 미루어 보는 바탕이 된다. 말하자면, 점성학에서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 가장 알맞은 바탕이 언제 이뤄질 것인지를 지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만약 우리(외계인)가 알기만 한다면, 그것은 일어난다. 왜냐하면 당신네 세계에서는 누구도 그 바탕을 바꾸어 놓을 수 없으므로 미래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들 가운데에는 행성의 집합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 예언들이 나온다. 그런데 꼬집어 말하면 바로 예언이 나오는 때가 그것이 빗나가게 되는 때이다. 어떤 예언이 나오면, 그것이 곧 그 예언대로 되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가동시키는 단추를 누르는 것이다.

지구에는 앞의 일을 미리 아는 예언자들이 있어 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미래 그것에 어울려 있는 것이 아니라, 행성수준에서 전체 ‘현재’를 속속들이 인식하는 것이다. 있는 모든 사실과 상황을 그렇게 크게 포괄하는 것이 미래의 일을 내다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 내다본 일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예언을 대중들에 널리 알리는 것 뿐이다.”

이것이 내가 본 이야기인데, 나는 이런 자료를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다. 이 자료로 미루어 나는 그가 정말 매우 놓은 도덕성을 지닌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

출처: ‘지금여기’ 중에서–미내사<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모임 북클럽 간행)

[트랜서핑 용어] 펜듈럼

 사념(思念) 에너지는 물질적인 실체이며, 그래서 흔적없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집단이 한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에너지 바다에서 그들의 사념의 파도들은 서로 겹치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에너지 – 정보체, 곧 펜듈럼을 형성한다. 이런 구조체들은 독자적으로 발달하면서 사람들을 자기의 법칙에 종속 시킨다. 파괴적인 펜듈럼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큰 기계 치에 부속된 작은 나사같은 신세가 되어 자유를 빼앗기고 만다. 자신의 에너지로 펜듈럼을 충전해주는 지지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펜듈럼은 더욱 세차게 흔들린다. 모든 펜듈럼은 고유의 특징적 주파수를 가진다. 예컨데, 그네를 일정한 간격(주파수)으로 밀어야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주파수를 공명 주파수라고 부른다. 펜듈럼 지지자들의 수가 줄어들면 펜듈럼의 흔들림은 잠잠해진다. 지지자들이 다 사라지면 펜듈럼은 흐름을 멈추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펜듈럼은 사람의 에너지를 빨아먹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감정에 걸려들게 한다. – 분노, 불만, 증오심, 격분, 불안, 근심,위축감, 혼란, 절망, 공포, 동정심, 애착, 황홀, 이상화, 숭배, 감탄, 실망, 오만, 자긍심, 자만, 멸시, 혐오감, 모욕, 의무감, 죄책감 등등.

파괴적인 펜듈럼의 가장 주된 위험성은 그것이 자신의 영향 아래 희생자가 된 사람을 행복을 누리는 인생트랙으로 부터 벗어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강요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가야할 길로부터 멀어지는데, 그러한 강요된 목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펜듈럼은 그 본질상 ‘에그레고르 egregor’ (심리학이나 은비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염체(念體) 혹은 집단적인 상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개념이 펜듈럼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에그레고르’라는 개념은 사람과 에너지 기반의 정보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전반적인 뉘앙스를 반영해주지 못한다.

 펜듈럼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지인이 보내온 문자 메세지

어제 10여년 간 친하게 알고 지내온 이웃이 보내온 메세지입니다.
잘 새겨들을 말이네요.

대흠.



미국의 랜디 포시(Randy Pausch) 교수가 임종을 앞두고 했던 마지막 강의에서 감동적인 몇가지 메세지를 공유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벽에 부닥치거든 그것이 절실함의 증거임을 잊지마세요.


-삶을 즐기세요. 즐길수록 삶은 내것이 됩니다.


-자신보다 주변 사람에게 집중하세요. 그만큼 삶이 풍요로와 집니다.


-솔직하세요. 그것이 삶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세요. 감사할수록 삶은 위대해 집니다.


-준비하세요.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세요.


-가장 어려운 일은 듣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피드백을 해줄 때 그것을 소중히 여기세요. 거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랜디 포시 교수의 강의 동영상 하나 퍼담습니다. 그런 분이었군요.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상덕부덕(上德不德)

상덕은 덕이 아니다.

그래서 덕이 있다.

 하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덕이 없어진다.

 상덕은 의도가 없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 없지만

하덕은 의도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있다.


<원문>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
而無以爲
下德爲之
而有以爲.

<독음>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
이무이위
하덕위지
이유이위.

(노자 38장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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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녀에게 덕을 베풀고자 하고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덕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지요.

노자를 만나니 이렇게 말해 줍니다.

“덕을 베풀려고 의도하지 않는 것이 상덕이다. 

그 때 비로소 덕이 있게 되리라.”

의도하면 의도와 멀어지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자연(自然)이기 때문이지요.

이 편지는 2500년 전 무위하며 자연으로 살았던 노자(老子)가 

오늘 “잘 하려고 하는” 일마다 힘들어지는 우리에게 전하는 편지입니다.

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고

주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철학박사 손기원 (지혜경영연구소 www.onwisdom.com)
 

아카샤장(Akashic Field)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다중우주(Multiple Universe), 가능태 공간을 알고 난 이후 같은 개념인 ‘평행우주’에 관심을 가져 왔는데, 내 관심사를 알고 있는 동료가 ‘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란 책을 권해서 읽고 있다. 그러던 중 전에 조금 알고 있었던 아카샤장(아카식 레코드)을 만났다.

지금 내 생각에는… 가능태 공간과 아카샤장은 같은 곳을 말하는 것 아닐까… 단지 서로 다른 각도로 접근하여 설명을 하는 것 같다. 좀 더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물리학 용어와 개념들이 도배가 된 앞 부분이 좀 어렵고 지루해서 포기할까 했는데 이제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아카샤장을 말하기 위해 어려운 물리학적 설명이 이어졌는데 아래 대목에서 대략 모습이 들어나는 것 같다.(나에게…^^)

대흠.

과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관
 실험과학들의 최첨단 분야에서 지금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하고 있다. 그 세계관은 우주에 다시 마법을 거는 세계관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관은 우주가 유기적이고 고도로 긴밀하게 강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공을 초월한 상관관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사물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물들을 ‘연결한다’. 정보가 사실상 모든 등급의 규모와 모든 영역에서 보존되고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주의 전일장인 아카샤장을 재발견하고 있는 최신 과학에서는, 정성적인 인간의 경험을 과학의 실험에 입각한 방법들에 의해 생성된 정량적 자료들로 보강한다. 이렇게 개인의 독특한 통찰과 여러 사람이 관찰할 수 있고 다시 겪을 수 있는 경험들을 결합해본 결과,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다시 말해서, 아카샤장은 생물권에 존재하는 유기체와 마음, 그리고 우주 전역에 존재하는 입자와 별과 은하를 연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진화의 한 단계 한 단계를 나아가는 기계같은 우주를, 자체적으로 생산한 정보를 토대로 구축된 전일적 시스템의 우주로 변모시킨다.

 세계는 기계보다는 살아있는 유기체에 더 가깝다. 세계는 과거에서 현재로 진화해온 경험을 토대로 현재에서 미래로 진화한다. 세계의 이치는 생명 자체의 이치다. 즉, 상호 연결과 상관관계를 통해 긴밀성과 전일성을 향해 진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의 이치인 것이다.

63쪽 ‘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