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래미 책상 위의 혼돈

예전에 써 놓은 글인데 화중님이 올린 도올의 글과 어울리는 것 같네요.
카오스적 창조성을 꿈꾸며 올립니다…

台湖.


그것을 편치않은 맘으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

아이들은 혼돈(Chaos) 나라에 살고 나와 아내는 질서(Cosmos) 나라에 산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치우고 정리하고 청소한다. 그와 동시에 한편에서 아이들은 꺼내고 흐뜨리고 어질러 놓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찰리 채플린 주연의 코메디 한 장면인가 ? 

우리 큰 딸아이 은빈이 책상은 늘 난장판이다. 연필,노트,책 그리고 연필통들이 제각각 개성을 발휘하듯 널브러져 있다. 그 위에서 숙제하고 공부한다. 우리 부부는 늘 정리정돈 하라고 잔소리한다.

와이프가 들려준 얘기,
패닉의 이적 어머니가 방송에 나와 말했는데 자기네 집은 항상 발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져 있었고 굳이 치우려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그토록 창조적이고 재기 넘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아들로 자랐는가? 그래도 우리 와이프는 어질러진 꼴을 보지 못한다.

‘지식의 지배’란 책을 참 오래 끼고 앉아 보고 있는데 그 안에 이런 말이 나온다.

법칙 7
질서를 다른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하는 사회는 창의적일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질서가 없다면 창의성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사그라지고 만다.
-레스터 서로우-

나의 직장생활 16년의 한 축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기득권을 해체시키기 위해 혼돈을 부추기는 선동가 혹은 선지자의 야심으로 점철된 것이었다.(노동운동가는 아니었음). 그러나 한편으론 알뜰히 아끼며 생활하는- 튼튼한 질서를 세우려 노력하는- 아내를 밀어주는 충실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이렇듯 나의 안팎에 혼재하는 혼돈과 질서. 

김지하의 ‘율려란 무엇인가?’에서…

“…그럼 뭐가 필요하냐? 보이지 않는 질서 안에 움직이는 어떤 신령한 생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카오스 코스모스, 코스모스 카오스, 이건 수운(水雲)의 불연기연(不然其然)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 아니다’와 똑 같아요… 컴퓨터식으로 No-Yes,Yes-No 뿐 입니다.  
이것 가지고는 새로운 세계가 창조 안됩니다. 지금 변증법 대신 들어가 있는 것이 이진법입니다.
디지털 이진법입니다. 디지털 가지고는 새 문화를 못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이겁니다. 제3의 논리로 돌아가야 돼요.
3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 대신 변증법은 보이는 차원의 하나,둘,셋을 잡았어요.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의 교호관계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봄의 <숨겨진 질서>라는 책을 참고하세요.
그러면 보이면서 보이지 않고,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그리고 현단계 차원과 그 속에 숨어 있던 새 차원이 새롭게 등장하는 이런 엄청난 생성 구조 안에서 이것과 저것,저것과 이것,’그렇다 아니다’,’아니다 그렇다’ 음과 양, 이런 식으로 나누는 것이 디지털 코드인데 이것만 가지고 안된다면 무엇을 3으로 보며, 3을 변증법적인 합명제가 아닌 무엇으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겁니다…….
‘카오스-코스모스’하고 ‘코스모스-카오스’하면 그때 그것 안에서 무엇인가 생성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미묘하게 나오는 거예요.  무늬,문채 아름다움. 제3의 어떤 무궁 신령한 것이……

이 늦은 밤 얘기가 다소 어려워졌는데 ‘지식의 지배’를 읽다가 떠오른 딸래미 책상과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이 머릿속에 이렇게 정리되고 있고 이것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화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2015_10_07_08.3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