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일기(5) – 오늘은 무슨 얘길할까 ?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얘기에, 넋두리에 귀를 기울여 준다는 것으로 글을 써나갈 충분한 힘이 된다.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찍히는 되는 여러가지 사소하고도 작은 사건들이 있다. 이런 사건들을 단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면 일기가 되고 수필이 된다. 그런데 그걸 그 다음날 새벽에 쓰려하니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뿐 더러 기억이 난다 하더라고 느낌은 어디로 다 증발해 버리고 신문의 사건소식과 같이 무미건조한 기록이 되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영감이 떠오를 때 틈틈히 메모를 한다고 한다.

하루중 불쑥불쑥 앞으로 지나가야 할 오랜(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짐.) 시간의 터널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힐 듯 하다. ‘풍경’, ‘거울’등으로 유명해진 동자승 그리는 원성스님의 글중에는 어머니를 그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고등학생일 때 자식을 출가 시킨(자신도 후에 출가를 했음.) 극성(? 이렇게 하면 욕되지.. 실은 이분은 뭘 아는 분 같다.) 어머니가 그리워 깊은 산사의 한밤중에 산에 올라가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것도 금촉수련이다. 또 하바드 출신 스님으로 유명한 현각은 그의 책 만행에서 구도자의 길에 뜻을 두고 스스로와의 갈등 끝에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과 연을 끊는다. 그야말로 생이별을 한 것이다. 그의 결정은 구도의 열정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이별 뒤에 분명 그에게 큰 고통 따랐을 것이다. 이것도 금촉이다.

벌써(?) 온지 열흘이 지났구나. 10일이 세개 모이면 한달, 석달이니까 3곱하면 10일이 아홉번 되면 석달이 지나 가는 것이구나….  이제 9분의 1 지났네…. ㅠㅠ

어제부터 이곳 생활에 한단계 더 깊이 적응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도 많이 유창해졌다. 모든 것은 머릿 속 어딘가에 있다. 10여년간 익힌 단어와 표현 그리고 그것들을 엮어주는 문법등 모든 재료는 이미 가지고 있다. 예전에 영어회화 배울 때 단어 500개만 알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맞는 말이다. 이제 영어가 유창해지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내 머릿 속의 영어엔진을 활성화(Activate) 시키는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이걸 위해서는 틀려도 좋으니 주저함이 없이 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영어엔진에 열이 오르면 내장된 재료들은 자연스럽게 말로 엮이고 나의 혀끝으로 입술로 전달이 되어 조화로운 음의 파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율동이고 율려라 할 수 있다. 영어 엔진이 식지 않도록 노력할 것…

어제는 점심때 나빈(Java programmer인 인도청년), 사쿠마상과 함께 피자헛에 가서 피자를 먹었다. 부페형 피자인데 5파운드(약 9천원)면 여러가지의 피자와 샐러드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콜라는 따로 돈을 받는다. 사쿠마상은 은행에 돈 찾으로 먼저 일어나고 나빈과 나는 변화와 일과 사람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서로 많은 공감대가 있음을 확인했다. 자신이 있는 미국 조직의 사람들(IT)은 자신의 울타리를 잘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들면 10년째 RPG(IBM AS/400의 program 언어) 프로그램만 하고 있다든지… 조직은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른 말로 SAP이 정착되면 그들은 떠나야 한다. 그러면서 나빈은 네가 여기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룹이 너를 버리지 않고 선택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도 알고 있는 얘기지만 이 친구 상황을 보는 눈이 단순 명쾌한 것 같다. 그리고 영리하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내가 읽고 있는 주역(The book of change) 책의 저자 웹사이트(영한 사이트)를 알려주겠다고 하니 환영한다. 자기도 책을 한권 빌려주겠다고 한다. 제목이 ‘Change(변화)’라는 책인데 나의 후원자 아닐 파텔이 읽어보라고 주었다고 한다. 공교롭게 나도 변화에 대한 책을 나빈에게 소개했고 아닐 파텔도 변화에 대한 책을 그에게 소개를 했다. 이런 대화와 공감뒤에 우리는 서로 더 친해진 것 같다. 나빈이 아마도 나에게는 좀 특별한 인연이 아닌가 글을 쓰며 생각해 본다.

오늘은 밤에 아지트 파텔과 여기 IT 부서원들과 영화구경을 가기로 했다.

오늘은 늦게 일어난 탓에 수련 시간이 거의 없다. 간단히 몸만 풀어야겠다.

9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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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1일 날 여기 도착해서 12월 초순쯤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Project가 늦어져 지금까지 볼모(?)로 잡혀 있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밤 비행기 타고 돌아가니까 이제 여섯 밤만 보내면…. ^^

2시간 전에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집사람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했거든요. 우리 집사람 쫓아 다닐 때부터 알던 친구들인데 그중 한 친구가 지난 해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된 것 같은데 …
아무래도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있을 겁니다.  전화를 하기 전에 무슨 말로 힘을 불어 넣어줄까 생각을 했는데 별 달리 할 말을 찾을 수 없더군요.

앞으로 힘내서 씩씩하게 살아야 해요 !!!
그러겠노라 대답을 하더군요.

도올 강연중 나온 얘기 한토막…

예수가 병을 치료하는 신묘한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이들이 그를 찾아 왔는데  그중에 한 환자는 예수를 한번 만져보기라도 하려고 빽빽히 둘러싼 군중들의 틈을 헤집고 어렵사리 그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순간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를 보며 한 말씀.
‘너의 믿음이 너의 병을 낫게 하였느니라.’

이 얘기를 들으면 한편의 감동적인 그림이 떠오릅니다.

台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