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일기(3) – 외로움과 여기 친구들

항상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고고한 척 살았고 혼자서 잘 놀기도 하나 마음 깊은 곳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틀간의 휴일을 앞 둔 금요일 저녁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썰렁함과 함께 고독의 냄새가 나를 질식 시키려는 듯 잠시 코끝을 스쳐 가슴을 파고든다.  오기전 게시판에 금촉수련하러 간다고 올린 글처럼 아마도 금촉수련이 시작되고 있나 보다.

하덕규의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고 …’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바람은 인간의 외로움을 자극하나 보다.

하덕규는 강원도 산골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아마도 부모와 떨어져..) 보냈지만 나는 부모와 형제 친구들 속에서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왜 이리 외로움을 잘 타는가 ? 남들도 다 그런가 ? 보통 사람들은 외로움을 애써 피하거나 느끼더라도 잘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외로움과 슬픔을 안으로 삭혀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킨 가수 조동진의 ‘슬픔이 너의 가슴에…’

슬픔이 너의 가슴에 갑자기 찾아와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렴
슬픔이 노래와 함께 조용히 지나가도록
내가 슬픔에 지쳐있었을 때 그렇게 했던 것 처럼

외로움이 너의 가슴에 물처럼 밀려아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렴
외로움이 너와 함께 다정한 친구되도록
내가 외로움에 잠 못 이룰때 그렇게 했던 처럼.’

내게 조동진은 뛰어난 감성으로 서정적인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가수로 보이기 보다는 구도자로 보인다.
하긴 모든 사람은 다 구도자이다. 누구나 의식하든 모하든 변치않는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상위 랭크된 TV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가 아닌 태음인 ‘나’는 그냥 가는대로 내버려두면 자꾸 안으로 움츠러 들고 수렴해 들어가면서 감상에 빠져 우울해 하곤 한다. 태음(가을)이 소음(겨울)으로 가는 것이다. 젊은 시절 한 때 결혼을 하지 않고 살겠다고 장담을 하고 다닌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림없는 소리다. 결혼을 안했으면 아마 사십도 못 넘기고 갔을 것이다. ^^

음양과 사상을 알게 된 뒤로 나의 이런 체질이 보다 분명하게 느껴진다. 즉, 나의 단점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안다고 하는 것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의 차이는 행동이 뒤따르느냐 않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다고 말 할수 있는 것은 나의 단점을 극복해 보려는 구체적인 행동이나 다짐이 나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동안 친구들 많이 사귀고 외로워 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다 돌아갈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알고 지내는 친구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사람들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제일 나에게 잘 해주는 친구는 아프리카(케냐?) 태생 인도계 영국인 Ajit Patel이라는 RPG programmer로 나이는 30세 정도이고 Anil Patel이라는 나를 불러준 International IT manager의 조카이기도 하다. 현재의 Group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정보담당임원)가 몇년 뒤에 물러나면 그의 엉클인 Anil Patel이 그 자리를 승계할 것이라는 소문이 이곳 영국뿐 아니라 미국까지 파다하다. 막강한 후원자를 업고 있는데 비해 이 친구는 별 기대를 않는 것 같다. 킥복싱을 좋아하고 좀 껄렁껄렁한 태도에 성격도 급해 보이며 다소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친구다. 유유상종이라 그런가 나하고 친한 이유가 …

재작년 우리나라 왔을 때 내가 친절하게 해줘서 그런가 나만 보면 항상 뭔가를 해 주려 애를 쓴다. 이번 주말에 뭐할거냐고 물어보길래 이번 주말은 사양을 했다. 이 친구는 나의 사적인 생활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

지난 오월에 여기 왔었을 때 맥주를 마시며 인터넷을 이용해 백만장자가 되는 법을 (우리나라에선 이미 실패모델로 확인된) 가르쳐 주겠다는둥 허풍을 떨다가 이번에 만나서 백만장자 계획이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물어 보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한번은 Freemason(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아느냐 물으면서 거기 가입하려 한다고 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프리메이슨은 전세계 정치,금융 및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계 비밀단체로 세계를 그들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욕을 가진 미국을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로 역대 다수의 미국의 대통령과 많은 서양의 지도층 인사들이 이 단체의 회원이라 한다.

그러나 들은 얘기일뿐 난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단지 그 조직은 몇단계로 되어 있냐고 물었더니 33등급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조직에는 33개의 커튼이 쳐져 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네가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하나의 커튼이 열리게 된다고 했고 다음 단계의 커튼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너는 잘 알 수 없을 것이라 말해 주었다. 이건 꼭 나쁜 뜻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조직은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우리 가정을 봐도 그렇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커튼이 있게 마련이다. 부모가 갖고 있는 모든 정보가 자식들과 공유될 수 없기도 하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얘기가 너무 빗나가는군…

다음은 사쿠마 요시이라는 일본의 IT Manager에 대해 얘기하련다.
이 양반은 나이가 50대 초반으로 나한테는 큰형님 뻘인데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든다. IBM Japan출신인데 영어는 잘 못한다. 그는 전혀 서양 체질이 아니다. IBM에 있을 때도 외국인들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아들이 셋 있는데 큰 아들은 대학 졸업반이란다. 95년에 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공항에 바래다 주는 길에 시간이 남아 나고야성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곳 박물관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부터 안중근 열사에 의해 제거된 이등박문등 우리의 웬수들이 그들의 영웅이며 위인으로서 커다란 초상으로 걸려 있었다.

사쿠마상은 어찌보면 재미있는 사람이다. 어린 아이처럼 천진한 면도 있고 어제는 SAP System의 우리 같은 3세계 직원들에게는 오픈되지 않을 비밀스런 부분에 들어가 보았다고 마치 친한 친구에게 몰래 간직한 비밀을 털어 놓듯이 알려 주었다. 그들이(영국본사) SAP의 핵심적인 부분을 결코 동방의 오랑캐(동이족)이 접근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우리는 서로 동의 했다. (일본과 한국은 중국대륙의 한족과 다른 동이족으로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란다.) 또한 어제 점심시간에는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얘기를 나누었다. SAP이 완전히 정착이 되면 자신은 조직에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라 했고 2005년이나 2006년 정도면 짤릴 거라 말한다. (일본의 회사 정년은 60세라 한다.)

회사에 SAP이 들어 오면서 크게 변하는 것중 하나는 미국,일본,한국등 각 지역에 있는 기존의 ERP Server(IBM AS/400)와 ERP S/W들이 철거되고 SAP S/W와 Server는 영국 그것도 우리의 모그룹에만 설치되고 다른 곳은 네트웍을 통해 그곳 프로그램에 접근해 일을 한다. 다국적 기업의 일반적인 행태다. 따라서 우리는 핵심 Business를 지원하는 Server와 S/W를 잃게되고 역할의 중요성이나 할 일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지사의 전산관리자들은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회사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기처럼 나이 든 사람은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살며 연금은 얼마나 되느냐고 계속 물었다. 이런 사생활 캐는 질문은 같은 동이족끼리나 서슴없이 되는 것이지 서양사람들 한테는 실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직감적으로 같은 동이족임을 알고 있었다. 암튼 이 양반이 좀 안돼 보인다.(어쩌면 내가 더 어려울 지도 모르지…난 연금도 못 받을텐데 ^^ 늘 와이프는 나의 이런 점을 지적한다. 자기 걱정이나 하라고 …) 연금은 월 30만엔(300만원) 정도 된다고 하길래 먹고 살만하지 않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서로 다른 사무실에 앉아 있어서 점심 먹으러 가자고 찾아오고 담배 피우러 가자고 오고 자주 찾아온다. 같은 동이족끼리 소통하는 방식이다.어제 같이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토요일도 같이 일하자고 했다. SAP을 열심히 배우자 서로 다짐하며…동병상련인가 ^^

내가 몇년전에 SAP Korea에 지원하여 Interview까지 했었던 것이며 몇 달전에 헤드헌팅 회사로 부터 미국계 회사의 ERP Project에 대한 Job 오퍼와 함게 이력서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사양한 적이 있었던 일이며 나이든 사람에게도 기회는 올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실력만 있다면 나이는 극복될 수 있다는 신념을 얘기해 주었더니 나한테 ‘Aggresive(공격적인)’하다면서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한다. 내 말에 매우 고무되었던 것 같다. 한 줄기 희망을 얘기 해주니 인지상정이라 고무될 수 밖에… 지금 10년째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에 대해 사쿠마상이 나이의 벽과 함께 느끼는 절망감이 어떠한가를 잠시 느낄 수 있었다.

사쿠마상을 통해 나빈(Naveen)이라는 미국에서 Java programmer로 B2B S/W 개발을 하는 인도청년을 만났다. 20대 후반의 나이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가족은 인도에 있으며 5년째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순진하고 빛나는 눈빛을 가진 친구로 마음도 투명한 친구다. 그의 영어는 발음이 너무 나빠 처음엔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누가 별로 말도 걸어주지 않는 3세계인들은 외로워서 그런가 서로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동이족은 아니더라도 같은 아시아인으로서의 공유되는 정서가 분명 존재한다. 덜 개인화되었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난 인도인을 만나면 대뜸 내가 아는 인도의 구루(Guru,스승)들 얘기를 꺼내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런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인디안이 아니라 모던 인디안들이다. 나빈 역시 모던 인디안이다. 그런데 그는 열심히 믿지는 않지만 힌두교를 믿는다고 한다. 인도의 종교나 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은 없고 잡다한 키워드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나는 이것 저것 끄집어 내어 말하면 그는 쉽게 공감을 한다. 모든 길은 하나에서 만난다.

그는 모던이지만 자기들의 전통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다. 그에게 강한 종교적 성향이 잠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몇년 전에 동서가 뒤늦게 신학대학 다닐 때 영어를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학교재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아인쉬타인은 생전에 한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그보다 더 종교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많은 돈을 들여 법당을,성전을 짓고 신도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번 주 토요일 런던에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길래 읽어야 할 책이 있다는 핑계로 사양했다. 다음에는 사양하지 말고 같이 어울리리라.

여기와서 몇개월 있는다고 영어가 저절로 느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혼자 SAP가지고 노는 일이라 그런 기회가 별로 없다. 사쿠마상이나 나빈의 영어는 공부에 별 도움이 안된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얘길 나누어야 한다.

건물내에서는 금연이라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전부터 안면은 있었는데 통성명은 하지 않았던 여자가 담배를 피우러 나온다.바람이 몹시 불어 그 여자가 있는 쪽으로 몸을 피하러 갔는데 그 여자는 날 보며 ‘Windy ! 바람이 세지 ?’라면서 말을 건낸다. 그녀 이름은 페이타, 독일에서 와서 지난 4월 부터 SAP Project team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상호간에 기본적인 호구조사 정보를 교환한 뒤 헤어졌다. 그 밖에 프랑스에서 온 여자도 있는데 앞으로 말도 트고 가능하면 술도 한잔할 기회를 만들어 볼까나 ? ^^ (근데 다 아줌마들이다.) 여기 아줌마들도 우리나라 아줌마 못지않게 대단한 것 같다. 그들은 가끔 사무실이 떠나가라 깔깔대고 웃어댄다. 아줌마들은 다 똑 같은가 ?

마지막으로 한 친구 더 소개하자면 조나산(정확치 않다.)이라는 한국계 독일인인데 75년에 태어나 1살까지 서울에 살다 독일에 입양되었다고 한다. 자기 형제중 하나는 일본인 혼혈인데 자기네 가족은 international family라 하며 웃는다. 한국어는 전혀 모르고 영어가 유창해 여기서 지금 프리랜서로 SAP(교재)의 독일어 번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월드컵은 역시 대화를 풀어가는 중요한 키이다. 그 친구 월드컵보고 매우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Be the Reds’ 티를 구하려 하다 재고가 없어 사지 못했다고 한다. 월드컵으로 인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데 자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입앙아에 대한 연민이 발동하여 명함을 건네주고 한국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 했다.

이 친구하고도 술 한잔 하면서 보다 밀도있는 사는 얘기를 나눈다면 나의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될 뿐더러 해외입양아인 이 친구에게도 고국에 대한 이해를 높히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오늘 저녁은 나빈과 함께 사쿠마상 숙소에 가서 저녁을 지어 먹기로 했다. 그때까지 주역 팔괘장을 다 떼어야 할텐데…

2002년 9월8일 일요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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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청년 나빈은 베지테리언, 채식주의자다. 종교적 영향인가 물었더니 자기 친구의 영향을 받아오다 어느날 갑자기 동물들을 죽이는게 싫어서 채식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고 한다.

혹시는 혁대와 구두는 가죽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계란은 먹는다고 한다. 계란은 생명이 아니라고 자의적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서 계란에 병아리의 영혼이 언제들어가는지 알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에 대한 예를 설명해주는데 그들은 공기 속의 세균이 호흡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일종의 섭취)을 막기 위해 천으로 코를 가리고 다닌다고 한다.

이쯤되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지름길을 타게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유를 취하는 나빈은 영리한 친구다.

집으로…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5개월간의 이곳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외로움에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고요.

台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