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일기(2) – 적응

제트래그(Jetlag)라고 부르는 시차병으로 오늘도 새벽에 잠이 깼다. 3시. 어제는 4시 눈이 아프다. 하루종일 노트북 스크린의 깨알만한 글씨들과 씨름을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SAP Client s/w의 깨알은 아무리 해상도를 조절해도 요지부동 커지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중에는 그런 깨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 일기를 우리 와이프에게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 피우는 담배 때문이다. 핑계겠지만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보통 때보다 머릴 많이 써야 하니까… 역시 핑계군. ^^
그것보다 나의 여린 마음은 지금의 환경에서 쉽사리 동요를 일으킨다. 어찌보면 담배를 끊는 것은 간단하다. 평상심을 유지하면 담배로 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평상심이…

디지탈과 아날로그.

내가 갖고 있는 일종의 화두(話頭)다. 뭔가 깨닫기 위해 혹은 풀기 위해 메모리(RAM)에 항상 상주시켜 놓은 의문.
현대 문명의 첨단은 디지탈이 이끈다. 그리고 반대의 극인 태초는 아날로그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서양문명(우리 주변에 동양문명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있는가 ?)은 뽀송뽀송한 잘 구조화되고 세밀하게 분화된 디지탈을 지향한다. 반면에 동양문명은 끈적끈적한 아날로그를 지향 아니 지향이라는 표현은 서양적 표현이고 머물고 있다고 해야 할 까 ? 암튼…

이곳 나의 생활 속에 이 양자가 공존하고 있다. 사무실 출근하면 그야말로 거긴 디지탈문명의 첨단이다.
다루는 것도 컴퓨터, SAP이라는 고도의 복잡성을 가진 S/W 그리고 잘 구조화된 그들의 문서들 Documentation, Definition, Process,조직 그리고 일하는 방식등등…. 그리고 내 노트북의 Windows XP 역시 첨단 디지탈 문명의 산물이다. 일하는 방식도 한국사람들에 비하면 개인화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회의를 할 때는 협력도 잘 되는 것 같다. 즉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일의 형상에 뽀송뽀송한 분명함(규칙)이 있다. 분화된 세부로 유기화된 조직을 만들려니 당근 좋은 Rule과 그에 대한 엄격한 서약이 필수다.
(반면의 한국사람들은 선을 긋기 분명치 않은 애매모호함 그런 끈적끈적함이 있다.)

호텔에서의 생활은 새벽에 일어나 몸의 굳은 부분을 풀기 위해 20분정도 도인체조를 하고 나머지 한 2~30분간은 명상을 한다. 아날로그적 생활이다. 어제 새벽 명상중에 내가 가야할 길(수련)에 대해 어렴풋이 가닥이 잡히는 듯 했다.
이걸 빠짐없이 흔들림없이 계속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스승을 따를 것 같지는 않고 나홀로 길을 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인생 공부에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몸공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우선 오래 살아야 뭘해도 하지 …^^)

둘째 마음공부
명상이나 참선을 하는 것이 그럴 듯한 마음공부일 것 같으나  내 생각에는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상황들과 부대끼고 느끼면서 고뇌하고 모색하고 하는 일체의 과정이 더 큰 마음공부다.

셋째 돈공부
우선 돈이 없으면 뭘 하기 참 힘든 세상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이 세마리 토끼를 다 잡을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
부디 내가 이 세마리를 모두 품에 안을 수 있길 빌어본다.

2002년 9월 5일 Crawle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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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달전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무지막지한 욕심을 부렸군요. ^^
지금은 그때 하고는 사정이 많이 다르네요.  변덕인가요 ? 글쎄요 ?
모든 변화는 그야말로 모든 변화는… 크게 보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그건 성장/발전을 수반합니다.

오늘(1월12일) 아침 일어나 TV를 켜니 비지스(Bee Gees)의 3형제중 모리스 깁슨이 수술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BBC 톱으로 나오는군요. 미국 마이애미라고 하는데 리포터가 병원 앞에서 보도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6천4백만장의 앨범이 팔렸다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은데 이 정도까지는 …아침에 회사가는데도 라디오에서 계속 얘길하는군요. 비지스가 영국출신인가요 ? 그런 거 같진 않은데…

올드팝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비지스 노래 한 두 곡은 좋아하실 겁니다. 저는 그들의 많은 노래들중 ‘Holiday’가 가장 인상이 깊네요. 중학교 때 첨 들었는데 그 당시 음악으로 볼 때 멜로디가 좀 파격적이었던 같습니다. 묘한 매력을 가진 기괴한 멜로디와 목소리…

박중훈이 열연한 ‘인정사정 볼것없다’에서 테마곡 나오죠.
곤청색 승용차 안에 앉은 검은 썬글라스의 킬러들, 그 위로 노란 은행 잎이 떨어지고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아이 그리고 갑작스런 바람,비,검은 우산 이어서 붉은 피…
비지스의 ‘Holiday’가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일어나는 살인사건 …
이걸 묵시적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

모리스 깁슨은 올해 53살이라 하네요. 아직도 한창 활동할 나이인데…  근자에 재혼한 부인 사이에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긴 하지만 하고 싶은 음악 할 만큼하고 돈 많이 벌어 놓아 남은 처자 걱정없고 인기도 누릴만큼 누리고 갔으니 큰 한은 없겠지요.

台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