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딤 젤란드와 나

아마도 그 전환점은 내가 삶에서 극도로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던 때인 것 같아요. 내가 25년 전에 나의 책 “트랜서핑”을 읽었더라면, 내 삶은 훨씬 더 평온하고 바람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아마 이 책을 쓸 수 없었겠지요… 그 모든 시련 끝에 어떤 채널이 열렸고, 그 통로를 통해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평생 나는 반(反) -트랜서핑을 해왔어요. 트랜서핑과는 반대로 해왔다는 거죠.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보고 배우지만, 바보들은 자신의 실수에서 배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바보였지요.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와 남의 실수 중, 어느 것에서 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영리한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만 알지요. 달리 말하자면, 영리한 사람은 정보만 알고 있을뿐, 그것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와 달리 바보는 부딪혀 머리에 혹이 날 때마다 거기에서 실수의 핵심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진정한 지식을 얻는 것이지요. 오직 바보만이 신비지식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에서 발췌-

이것은 의미있는 우연의 일치이거나 아니면 내가 바딤 젤란드와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하나의 잉여 포텐셜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나도 지난 25년 간의 직장 생활 속에서 트랜서핑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다. 나 역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많은 펜듈럼들과 전쟁을 벌여왔다. 그 가운데는 스스로 만든 잉여 포텐셜로 인해 균형력의 제어를 받았던 적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바딤 젤란드가 위에서 한 말처럼 바보처럼 스스로 부딪혀 얻은 많은 혹들을 머리에 가지고 있고 그것이 삶의 교훈이 되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난 25년간 나를 괴롭혀온 펜듈럼들에게 원망의 마음은 전혀 없다. 거기에는 어떤 합리, 논리 등의 이유를 붙일 수 없다. 그 모두 내 자신이 불러들인 펜듈럼들이고 내가 그것들에 동조를 한 결과이기 때문에 …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지금 나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반면에 지금 알고 있는 트랜서핑 같은 지식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나의 이러한 경험이 타인을 위한 것이 될 가능성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대흠.

가만히 있으면 팔자(八字)대로 간다?

사주팔자에서 팔자(八字)를 사람들은 보통 ‘타고난 운수’란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주말 동안에 쏟아냈던 부정적인 말들을 생각하며 “이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데..”란 자책을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나의 사주팔자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쌓여온 관념의 관성은 부정적인 방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합리 혹은 논리의
이름 하에 당위성을 가질지언정 나의 성공적인 미래하고는 전혀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불만을 갖거나 남을 경멸하거나 하는 행위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리고 잉여포텐셜은 자연의 균형을 깨는 잉여 에너지이므로 자연의 균형을 조절하는 힘(균형력)은 이를 제거해버리는데 그 과정에서 그 행위의 당사자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한다. 왜냐하면 無心한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 방법이 가장 자연스럽고 쉽기 때문이다.

오늘 출근길 운전하면서 주말에 만들어낸 잉여 포텐셜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잉여포텐셜은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한 만큼 삶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틀어 놓았음이 분명하단 생각이다.
 
팔자대로 가지 않으려면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를 부지런히 깨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대흠.

잉여 포텐셜과 자연의 균형력

 

자연 속의 모든 것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기압이 하강하면 바람이 불어와 다시 균형이 회복된다. 온도의 차이는 열교환에 의해 보상된다. 에너지의 잉여 포텐셜(Potential)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불균형을 제거하려는 균형력(균형을 유지하려는 힘)이 나타난다.
이 세상은 전체가 ‘펜듈럼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어떤 펜듈럼은 강하게 흔들리고 있고, 또 어떤 것은 힘이 약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서로 상호 작용한다. 각각의 펜듈럼은 이웃한 펜듈럼으로 부터 자극을 받고, 또 그것들에게 자극을 준다. 이 복잡한 전체 시스템을 지배하는 근본 법칙 중의 하나가 바로 균형의 법칙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균형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큰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할 때, 혹은 평가절하 할 때 사념 에너지는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릇된 평가는 두가지 경로를 통해 생길수 있다. 하나는 대상에게 지나치게 부정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가의 오류, 그 자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 그릇되고 왜곡된 평가는, 그것이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에만 잉여 포텐셜을 만들어 낸다.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한 대상과 상황만이 당신의 평가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잉여 포텐셜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때로는 방심할 수 없이 위험한 역할을 한다. 이 포텐셜을 제거하려는 균형력의 작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에서 발췌 –

중요한 일을 할 때 일이 어느 단계에 오르기 전에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아마도 잉여 포텐셜을 만들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란 성경 말씀도 역시 잉여 포텐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인트컨트롤에서도 소망을 프로그램(기원)할 때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다.
 
불만을 갖는 것도 잉여 포텐셜을 만들고 특히 남을 경멸할 때 잉여 포텐셜이 크다고 한다.

트랜서핑의 원리의 밑바닥에는 동서양의 현자들이 이미 수도 없이 했던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 저자 바딤 젤란드는 이를 에너지적 관점에서 성공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중용(中庸)의 도(道)’ 가 그렇고,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어떠한 상황에도 한 곳으로 치우침이 없는 도리, 진정한 삶의 중심을
지키면서 자신의 주체를 잃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군자의 길이거니와, 이 시대에서는 성공하는 사람의 자세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의 트랜서핑 카테고리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하거나 발견되는 펜듈럼, 잉여 포텐셜 등의 사례를 이야기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로 하여금 더욱 깨어 있도록 정진할 것이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