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ization Practice (시각화)

나른한 백일몽과 효과적인 시각화의 차이는 원하는 바가 일어날 것이란 믿음에 있다.
효과적으로 시각화 할 때 당신은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당신은 대통령 취임식에 서 있는 자신을 마음 속에 그릴 수 있고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을 하는 당신을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시각화를 통한 성취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오르기 보다는 정상을 향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 높아 보이기만 하던 히말라야의 고봉이 바로 여러분의 눈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러한 지루한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면 결코 정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대흠.

출처: 한국단학회 연정원

 

몽상과 비전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말은 적으며 행동은 많이 한다.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확신에서 힘을 얻는다.
몽상가는 외부 환경에서 힘을 찾는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한다.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둔다.
존 맥스웰 (John Maxwell)의 글입니다.
내면의 확신에서 솟아나는 힘을 바탕으로 행동하며,
역경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전진하는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조영탁 Dream

John Lennon은 비전가? 몽상가?

그 자신도 노래에서 Dreamer라 했듯이 몽상가 수준을 넘진 못한 것 같다.

너무 일찍 가버린 탓도 있을게다.

그럼 대흠 넌?

자신있게 말한다. 난 몽상가다… 아직까지는…^^


존 레논과 오노 요꼬가 함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무엇이 성공인가?

울트라마인드 ESP를 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호세 실바 박사의 말을 접하며 또 다시 원초적인 질문에 부닥쳤다.
그동안 덮어 두었던 해묵은 내적 논의를 다시 해야 하나?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무엇이 성공인가?’에서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고 말합니다.

대흠.

[감각 깨우기] 척추와 허벅다리 뼈 진동 느끼기

인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없는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있는 것 처럼 의지대로 느낄 수 없는 신체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불수의근이 그럴 것이다. 덧붙여서 척추와 허벅다리 살 속 깊이 잠복한 뼈를 느낄 수 있는가? 심지어는 진동까지…

울트라마인드 ESP의 몸 이완 안내문에 다음과 같은 초보에게 너무 심한 요구가 나온다. ㅜㅜ

이번에는 뭔가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허벅다리 속 뼈의 진동을 느끼십시오. 지금 쯤은 그 진동이 쉽게 느껴져야 됩니다.”

“At this time, I wamt you to do something extra. Sense the vibration at the bone within the thighs; by now these vibrations should be easily detectable…”  P43

계속하면 느껴질 것 같다. 알파 상태에 들어가는 데 늘 허벅다리 근육에 긴장이 잘 풀리지 않는데 이런 감각 깨우기 훈련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대흠.

수의근, 불수의근, 수의심, 불수의심

[감각 깨우기] 수련중 신체의 느낄 수 있는 부분과 느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수의근과 불수의근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참고하려고 아래 글을 퍼왔다. 수의심과 불수의심도 글쓴 분의 확장된 생각으로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흠.

출처: 태고종 게시판


물처럼 바람처럼 – 내 맘이 내 맘처럼

신경, 골격과 함께 우리 몸의 운동기능을 감당하는 근육에는 수의근(隨意筋)과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있습니다. 한자 뜻풀이 그대로 수의근은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근육이고, 불수의근은 그렇지 못한 근육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팔 근육은 수의근 입니다. 우리가 팔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별다른 이상이 없는 한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팔을 들 수 있습니다. 다리나 등에 있는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같은 한 몸에 있지만 심장 근육이나 내장 근육의 대부분은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이 알아 움직이는 불수의근 입니다. 불수의근은 자율신경의 지시를 받습니다. 우리 근육이 골격근인 수의근과 내장근인 불수의근으로 나뉘는 건 생명의 소중함을 원초적으로 지키기 위한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몸에 수의근 불수의근이 있듯, 우리 마음에도 수의심(隨意心) 불수의심(不隨意心)이 따로 있는 듯 합니다. 내가 의식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마음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맘대로 작동하는 마음 말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내일이 시험날인데, 오늘 이리 놀아서는 안되는데, 알면서도 책상 앞을 떠나고야 마는 내 마음. 저 이를 더 이상 미워해서는 안되는데, 그래봤자 아무에게도 도움될 게 없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저 치가 미워 죽겠다 싶은 내 마음. 불수의심에 부대끼는 게 삶이라는 생각마저 들곤 합니다.


곰곰히 살펴보면 수의심은 우리 마음 가운데 의식의 영역에서 발동된 마음이요, 불수의심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동된 마음이 아닌가 싶네요. 지나친 단순화의 우려도 있지만, 의식이 이성과 자기극복 의지의 자리라면, 무의식은 본능과 욕망의 자리일 겝니다. 흔히들 지적하듯 의식은 마음이라는 빙산의 극히 일부요, 물 밑 잠수 부분인 무의식의 세계는 그야말로 광대무변이라고들 합니다. 무의식 영역이 넓고 깊은 만큼 인간의 마음과 이에 따른 행동을 지배하는 곳은 상당 부분 무의식일 겝니다. 인간은 이성에 따라 판단 행동하는 경우보다는 욕망을 따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게지요. 즉 사람은 ‘해야할 일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게 인간 본면목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하고픈 일’ 보다는 ‘해야할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하니, 여기서 삶의 질곡이 발생한다고 하겠지요.


하고픈 일이 곧 해야할 일이 되는 삶은 불가능할까요. 다시 말해 몸과 맘이 하나로 이어지는 삶 말입니다. 그런 삶이 당장 성취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삶을 지향하는 자세만이라도 밝혀볼 순 없을까요.


우리 몸 근육에서 시사점을 찾아봅니다. 상기대로 우리 근육은 수의근 불수의근이 엄연한데, 다만 호흡근만은 두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호흡근이라는 별도의 개별 근육이 있는 게 아니라 횡경막, 복근 등 호흡에 동원되는 모든 근육들의 유기적 구성을 통해 호흡은 수행된다고 합니다). 즉 숨은 의도하면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지만 끝내 스스로의 의지로 숨을 안 쉴 순 없기에, 호흡근은 수의면서 동시에 불수의입니다.


우리가 팔을 드는 동작은, ‘팔을 들라’는 두뇌의 지시가 전기신호로 근육을 수축시켜야 팔이 들리는 것인데, ‘팔을 든다’는 생각이 어느 시점에서 전기신호로 바뀌는 지는 현대 심신의학에서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즉 심신의학의 핵심과제인 심신 연결 기제가 아직 규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지혜는 객관적인 기제 규명은 아니지만 임상적 결과는 갖고 있지요. 즉 옛부터 몸과 맘을 하나로 잇는 통로로 호흡을 강조해 왔습니다. 호흡근이 수의와 불수의 이중성을 갖는 건 호흡이 몸과 맘을 하나로 잇는 길임을 자연이 암시한 게지요.


숨도 못쉴 것 같은 세상일수록 의식으로 깨어 있어 숨이나마 제대로 쉬어 보는 지혜가 아쉽습니다. (若水)    


작   성   자 :  한국불교

명시적 선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침에 출근해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점심 시간을 이용해 30 분간의 알파 명상으로 깨끗하게 씻어 버렸습니다. 

월요일 오전에는 이러한 월요병을 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 그냥 놔두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알파 명상을 해서 좋아진건지 아님 늘 그렇듯이 저절로 사라진건지 분명하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이걸 분명하게 선언해 주는 습관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지 않은 일이 -특히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들- 자주 일어나는 데 이와같은 긍정적이며 명시적인 선언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블랙 박스를 투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