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테레사, 정혜신 박사

지난 주 목요일 저녁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갔습니다. 제목만 보고 별 생각없이 갔는데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네요. 참석자들은 50명 안팎으로 대부분이 20대,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DEMENTO

정혜신 박사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자살과 남은 가족들의 철처하게 망가진 삶, 5공 시절 고문 피해자들이 겪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 그리고 그 치유 과정 등에 대해 나직하게 때론 연민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주말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을 치유 상담하면서 스스로도 큰 보람과 깨달음을 얻은 듯 했습니다. 치유의 본질, 정신적 치유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대면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외면하게 되지요. 측은지심으로 그런 힘겨운 일에 맞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혜신 박사에게 ‘리틀 테레사’란 별명을 붙여 주고 싶습니다.

세미나는 참석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칠판에 적고 그에 대해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세미나 참석자 질문

참석자들 중에는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고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뭔가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하는 사이사이에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5공 시절 고문 피해자들의 사례들이 인용되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쌍용차 해고자란 딱지가 붙어 다른 직장에 취업을 할 수도 없었고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심지어 그들의 부인들까지 자살을 하여 남겨진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에서 빠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정혜신 박사가 하고 있는 일로 모아지면서 쌍용차 피해자 치유의 결과로 만들어진 ‘와락’이란 자발적 치유 모임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습니다. ‘와락’은 정신 피해자들이 만든 자발적 치유 모임으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합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을 다시 와락! ‘함께 살자’

‘쌍용차 나이팅게일’ 정혜신 전국 ‘와락’ 나선다

정혜신 박사는 기업 CEO와 임원들 대상의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마인드프리즘이란 회사의 대표로 있는데, 인상적인 것은 그곳에서 심리 치료는 받았던 기업의 임원과 CEO들 중 상당수(이 부분을 강조합니다.)가 와락과 피해자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여러가지 이유로 그들의 이름은 밝힐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런 사태의 가해자라 할 수 있는데, 쌍용 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가정 사정에 대해 자세히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그들은 구조 조정과 같은 일들을 단순히 경영의 수단으로만 생각했고, 그 이면에 이런 가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 역시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굳이 그들의 변명을 제가 대신하자면, 그들과 해고 노동자들의 삶 사이에 놓인 환경적인 요소들로 인해 일종의 단절이 일어났고, 만일 그들이 이런 속사정을 헤아리고 있었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세미나 끝나고 정혜신 박사님과 한 컷. 친절하게 응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세미나 끝나고 정혜신 박사님과 한 컷. 친절하게 응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세미나 중에 저도 질문을 하나 올렸습니다. “정신과의 정신 치유란 것이 대면하여 상담하는 것인데 시간이나 비용(고비용의 정신과 의사)으로 볼 때 다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없는데 혹시 대규모로 치유를 공급할 방안이나 움직임은 없는지?” 라고 별 기대없이, “뭐 별거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툭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답도 없을 질문에 엄청난 답이 나오더군요.

정혜신 박사는 세미나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음에 관한 문제의 열쇠를 전문가들로 부터 가져와야 한다.” 처음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답이 바로,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란 프로젝트입니다.

 “모든 인간은 상처가 있고 따라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치유를 경험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치유를 합니다. 치유가 되는 과정을 경험한 그들은 누구보다도 환자의 아픔과 치유의 중요성, 효과 그리고 방법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전문의 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돈 한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로 부터 치유를 받은 시민들은 또 다른 치유가 필요한 시민들을 찾아 나서 치유를 할 것이라 합니다. 그야말로 치유가 기하급수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혜신 박사는 이걸 오픈소스 프로젝트라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정신이나 아이디어 모두 멋지지 않나요? Laughing

시민들의 호응도 너무 좋아서 등록 개시 이틀만에 마감이 되는 바람에 등록하지 못한 시민들의 원성으로 서울시 직원들이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

엄마가 필요하신 분은 카톡플러스 친구 신청바랍니다.

그 밖에 세미나 중에 메모를 했던 내용을 두서없이 제 생각을 좀 붙여서 아래에 옮깁니다.

  •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구하는 목자 
    한마리 양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나머지 99마리 양을 지킬 것인가?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마리 양을 포기한다는 것은 계산적인, 비지니스적 구원이고 결국 99마리 양도 목자를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얘기지만, 요점은 “개별적 존재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파고 들면 보편성을 만난다.”라 생각합니다.

  • 의사가 많아지면 병이 많아진다.
    의사들은 병을 너무 많이 규정하여 병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 자살 예방 5개년 계획을 세웠지만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는 줄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큰 폭으로 증가했다.
    치유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 Intellectual Insight(지적인 통찰)는 도움이 안되고 Emotional Insight(감정적 통찰)이 더 도움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적인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을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도구로 본다.

  • 인간은 누구나 생존 본능을 갖고 있다.

끝으로 정혜신 박사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은 불편한대로 외면하지 말고 겪어야 한다“(이 대목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챙김 명상이 생각났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극심한 어려움을 겪다가 갑자기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대박 행운으로 인해 치유를 통해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그대로 덮어둔채 지나치게 되는데 나중에 그 문제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긍정 심리학의 문제를 지적하며 일방적으로 긍정을 주장하고 파는 현상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그건 일종의 폭력이고 건강한 불편함이 있어야 하며 그걸 직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편 긍정주의 옹호자인 저는 뜨끔했습니다. 🙂 그리고 정혜신 박사의 말에 사족을 달았습니다. 말씀하신 건 “강요된 긍정일 겁니다. 긍정 그 자체는 문제가 없지요.” 그랬더니 미소로써 동의를 합니다.  강요된 긍정도 도그마입니다.

아래 정혜신 박사의 TED 동영상과 언론에 소개된 기사 링크 붙이며 긴 글 마칩니다.

[매일경제] ‘사랑합니다 고객님’에 가려진 눈물…가면 쓴 당신, 감정노동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