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Henrik…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게 맞을 겁니다.

이 친구는 제가 25살 때 그러니까 한 이십년 전쯤 알게 된 24살 먹은 덴마크 청년입니다. 지금은 마흔을 훌쩍 넘겼을텐데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가끔 생각이 납니다. 몇개월 정도 같이 다녔는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친구입니다. 그는 떠돌이 여행자로 제가 다니던 영어학원의 선생이었습니다.

자신을 째즈 뮤지션이자 명상가라 소개하며 국립음악원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마음 속에 새가 들어있어 한군데 머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모는 소설가, 화가라 하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 같은데 정처없이 떠돌아 다닙니다. 생김새는 마치 싸이먼&가펑클의 아트 가펑클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귀공자 타입이죠. 행색은 학원장 한테 얻어입은 혁대도 없는 바지를 허리에 걸치고 싸구려 티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차라리 작위적이다 느껴질(이건 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거지만요…) 정도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없었고 그런 삶이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한번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만나서 어딜 가기로 했는데 그날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여름에 어떤 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겨울 코트를 입고 우산을 쓰고 서성대고 있었는데 바로 헨릭이었습니다. 속에는 하얀 런닝셔츠 바람에 말입니다. 전날 비를 맞는 바람에 입고 나올 옷이 없었다고 합니다.

광화문 골목길에 외국의 히치하이커(hitchhiker)들이 찾는 대원여관 – 히치하이커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관인데 지금도 있나 모르겠네요- 이란 곳에 묵고 있었는데 당시 돈으로 하루밤 4천원인가 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거기서 그 친구 살림을 봤는데 사각 트렁크에 여름, 겨울옷 한벌씩 담아 가지고 다니더군요. 카세트 테입이 몇개 있었는데 일본 친구가 전통악기로 연주한 음악과 자신의 피아노 연주곡 … 딩..동..댕… 어린아이가 장난노는 듯한 아주 단순한 멜로디의 음악이 담겨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가로는 라벨을 좋아하는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라벨을 모르고 이름만 압니다.)

대학로엘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장준하 선생 흉상을 보더니 ‘Good Face!’라 하더군요. 대학로 같은 곳은 자기 나라에 널려있다고 하며 싫어하길래 당시 제가 살던 우이동 집 뒷산에 백련사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는데 거길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잠시 침묵에 빠져들더니 ‘Spiritual!’ 하더군요. 역시 스님들은 터를 잘 잡는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음악을 평가하는데 사용하는 말이 두 가지입니다. ‘Sweet’ 그리고 ‘Spiritual’.

다방에서 김민기의 노래가 나오길래 어떠냐고 했더니 ‘Sweet’라 하며 일축하더군요. 김민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런 말을 여기 쓰기가 미안하지만 어쩝니까… 그렇다는데. 집으로 데려가서 조동진의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의 노래 중 좀 난해한 8분짜리 ‘어둠 속에서’란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조금 낫다고 합니다.  당시 여동생이 사서 듣던 레너드 코헨의 앨범을 보여줬습니다. 자켓의 그의 사진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Strange person’이라 나직히 말합니다. 내가 보기엔 이 친구도 이상한데… 그럼 레너드 코헨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까요 ?
조동진이 산자락에 있다면 레너드 코헨은 산꼭대기에 있다고 합니다.  뭐가 그런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지 당시는 알 수가 없었죠. 암튼 그때부터 저는 레너드 코헨의 판을 사모으며 들었고 그후 지금까지 코헨의 신비스런 분위기에 한동안 취해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친구가 관심을 가질 우리 음악은 뭘까 하다가 홍신자가 목소리(울다가 웃다가 괴성을 지르는)를 내고 황병기가 가야금 연주(연주라기 보다는 가야금 통을 긁는 소리 같은…)를 한 ‘미궁’이란  전위적인 현대 음악을 발견하고 사서 테이프에 녹음해서 주었더니 다음 날 ‘Spiritual!’하며 감탄을 합니다.  얼마 전에 이 ‘미궁’이란 음악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귀신 나오는 음악이라 그러더군요.

[황병기 미궁 1부]
[황병기 미궁 2부]

헨릭은 말이 많은 걸 싫어합니다. 말 많고 질문이 많은 저보고 ‘참새(Sparrow)’라 합니다. 헤르만 헷세의 옆모습 사진을 보면서 독수리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독수리는 침묵 속에서 하늘 높이 천천히 날아 다닙니다.

한번은 다방에서 제가 얘길 하는데 듣다 말고 뒷자리에 앉아 노란머리의 외국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아이와 장난을 놀더군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달을 가리키며 ‘The moon is serious~’ 그러더군요. 외국인한테 물어본 적은 없는데 전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이해못할 부분중 또 한가지는 미국 포크락(Folk Rock)의 대부이며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친 거장 ‘밥 딜런’을 싫어하다 못해 증오를 합니다. 그를 만나면 두둘겨 패주겠다고까지 합니다. 당시 영어가 짧아 자세히 묻지는 못했는데 죽을 때까지 궁금함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묘하게도 제가 아직 번역을 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영어 글이 있는데 제목이 ‘Leonard Cohen and Bob Dylan’ 입니다. 좀 한가해지면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 친구와 헤어진 후 우연히 광화문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나를 만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하더군요. 죽음에 대해서 물었는데 자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고 하더군요. 당시 저는 인도의 신비사상가 오쇼 라즈니쉬에 빠져 있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Monkey라고 일축해버리더군요.

가끔 그 친구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 비해 영어도 좀 더 되고 하니 물어보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이제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쯤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까요 ?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헨릭…

인터넷 검색을 해볼까요 ?
하하하~ 역시 없군요.

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