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조선일보 인터뷰>

78세의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휜칠한 키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노(老)신사였다. 지식세계의 정상에 우뚝 선 석학(碩學)의 권위적인 몸짓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적당한 스피치 속도와 중간 톤의 부드러운 목소리, 리드미컬한 손동작이 눈·귀를 사로 잡았다.
그의 입을 통해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혜와 통찰들이 손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하모니를 이뤘다. 마에스트로의 지휘 같다고나 할까.

12시간이나 되는 장거리 비행, 국내 주요 신문·방송사와의 연쇄 인터뷰에도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후 1시간40여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단 한 번,
딱 한 모금의 물만 마셨다. 의자 등에 기대지도 않았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BT(바이오 테크놀로지)·신경과학·NT(나노테크놀로지)로부터 중국의 미래와 북한 핵 문제까지….

그의 지식 박스는 쉴새 없이 개폐(開閉)를 반복했다.

천생연분인 부인 ‘하이디’ 여사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의 얼굴표정은 활기로 가득찼고,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56년을 같이 살았건만, 부인과의 첫 만남 대목에서는 친구들에게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자랑삼아 떠드는 20대 풋내기 청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낸 딸 얘기가 나오는 대목에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떨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모습은 미래학자 역시 똑같았다.

그는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신문의 미래’에 대해 묻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겠지만, 직업을 바꾸시죠?”라는 농담으로 웃음을 끌어 냈다.(그는 신문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그렇더라도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0년대 TV가 보급됐을 때 잡지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그는 “요즘에도 매일 아침 6~7개의 신문을 읽느라 손 끝이 까맣게 된다”며, 스스로를 ‘신문 중독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통찰력의 원천’에 대해서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식의 원천으로 끝없는 호기심·독서와 사색·신문을 꼽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앨빈 토플러’ 이름 자체가 하나의 거대 지식담론(談論)의 화두다. 그래서 어렵고, 복잡한 담론성 질문은 피했다. 대신 그의 일상의 편린(片鱗), 세상·세계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소회(所懷)를 묻는 것에서 그의 속깊은 미래와 경제사상(思想)의 직관을 끌어내고자 했다.


―용접공 생활·칼럼니스트 등 경력이 다양합니다.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교훈을 준 경험은 무엇입니까?

“오호, (웃음)…. 공장 근로자에서 백악관까지 경험이 다양하죠, 사실 두 곳 사이의 시간은 2~3 년밖에 안 돼요. 놀라운 전환이랄까. 경제의 밑바닥에 있다가 워싱턴에서 국가 최고 결정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봤으니까. 하지만 가장 교훈적인 경험은 직업이 아닙니다. 모든 다양한 경험들이 복합적으로 교훈으로 작용했습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인생이) 참 재미있네요.

“더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나와 언제나 함께 일하는 아내입니다. 그녀는 매우 지적(知的)이에요. 하지만 (남편인 나를) 피곤하게 만들어요. 그냥 흘러가도록 놔두질 않습니다. 우리는 논쟁하고 토론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그녀는 나에게 ‘바보 같다(stupid)‘고 면박을 줘요. 그러니 내가 외부적으로 어떤 사안 얘기를 할 때 어리석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아내가 나의 구원자인 셈이지요.”

―세계적인 석학이 부인에게 면박이라…. 믿기지 않습니다(웃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관여하지 않은 일은 안 합니다.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하는 차원을 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의문(raised eyebrow)을 갖죠, 내가 학생이라면 그녀는 깐깐한 선생님이죠. 그녀는 나를 시험 같은 것에 쉽게 통과시켜 줄 타입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업. 참 훌륭하죠(terrific)?”

―일종의 파트너십 같습니다. 박사님은 글을 쓰고, 아내는 출판을 하고….

“혹시 내가 (인터뷰에) 몇 분 늦었나요? 아내와 전화통화 하다 왔거든요. 지금 LA에 있어요.”(웃음)

―부인의 취미는 뭡니까?

“세금!(웃음) 그녀는 요즘 정부 조세 정책에 아주 분노하고 있죠.”

―부인과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나요?

“(제가) 뉴욕대 학생일 때 만났습니다.하이디는 뉴욕대에서 석사과정 여름 학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막 남부에서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뉴욕대 친구들을 보러 갔다가, 같은 수업을 듣는 한 여학생이 아름다운 금발의 여학생과 함께 앉아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남부로 안 갔죠. 우린 그날 밤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바그너(Wagner) 공연이었죠? 야외 공연이었는데, 그 이후 계속 함께 해왔습니다. 만난 첫 날부터 말입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정직함, 서로에 대한 완벽한 오픈 마인드,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 가족에 대한 헌신….”

―따님이 계시죠.

“(표정이 어두워지며) 15년간 신경근육성(neural muscular) 질병과 싸우다 6년 전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우린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죠.”

―당신의 통찰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죠. 사회는 그것에 대해 보상을 하고. 과학자든 프로 골퍼든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거죠. 하지만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는 한 분야에서만 재능을 보인 것이 아니었기에, 하늘 아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전문화의 굴레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정보를 모아 통합하여 하나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었습니다. 공장에서 백악관, 비즈니스 매거진, 대기업 컨설팅 전문가…. 모든 종류의 일들이 상당히 특이한 행보였지요. 이 모든 게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보는 법, 현실을 새롭게 조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많은 예측을 하셨는데….

“예측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해요. 확신성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제안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간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물리적 환경에서도 우연은 발생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여러 번 현실화 된 아이디어들을 선보였지요. 첫째가 ‘미래 쇼크(Future Shock)’였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비하라’는 것이었죠.”

―틀린 것은 뭡니까?

“환경운동에는 별 영향을 못 미쳤던 것 같아요. 1958년에 수질오염에 관한 글을 썼고, 1970년 ‘미래 쇼크’에서는 지구 온난화, 빙하가 녹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정말로 틀린 것은 싹 잊었는데….(웃음)”

―잊었다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죠?

“(웃음) 1970년에 쓴 책 ‘미래 쇼크’에서 우리는 동물과 인간을 복제하게 되리라 예측했어요. 실제로 동물이 복제되었고, 정부가 뭐라고 하든 누군가에 의해 인간도 곧 복제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측은 맞았는데, 다만 우리는 1985년까지 일어날 것이라고 했죠. 시기가 완전히 틀린 셈이죠.”

―거짓을 전파한 셈이군요.

“(억울하다는 듯) 그런데 날짜를 제가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 생물학자가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 예측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날짜예요.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얼마나 지속될지,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선거가 아니고서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에선 실수도 있었지만, 성공률은 꽤 높은 편입니다. 변화의 가속화, 지식의 경제성 변화…. 주된 아이디어는 모두 옳은 것으로 증명됐잖아요.”

■”바이오·나노 산업 획기적 변화 일어날 것”

―당신에게 CEO제의가 온다면 어떤 기업, 어떤 산업에서 일하고 싶으십니까?

“자격이 안 되지만 굳이 하라면 바이오테크놀로지나 신경과학 쪽을 택하겠습니다. 나노 분야도 덧붙이겠습니다. 생물학이나 신경과학 분야가 나노 규모의 레벨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일 전 NASA(항공우주국)에서 리더로 일하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방금 제가 언급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일이 굉장히 흥미롭고 잠재력이 엄청납니다. 제가 선호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내 거기에 투자하는 것이 제일 아닌가요? 저는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하며 제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 100만달러가 있다면, 무엇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겠습니까?

“한가지 분명한 건, 하이디와 나는 주식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습니다.”

―왜죠?

매일 신문에 난 숫자들에 일비일희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20, 30년 전에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집 한 채와 부동산이 있고,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 있지만 주식 투자는 안 합니다.”

―가장 소중한 재산은 부동산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한가지 공개할게요. 아무도 모르는 건데…. 내가 뮤추얼펀드 사업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어요. 1960년대였던가…. 뮤추얼펀드 관계기관으로부터 책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썼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부동산 값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조금 들었습니다. 집주인들이 합심해서 집값을 올리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살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그런 것은 경제에는 좋지 않아요.”


■대기업군(群)에만 의존하는 경제는 위험하다

―한국경제는 대기업군(群)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재벌은 대단한 조직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어떤 국가도 소수조직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중소기업이나 모든 분야의 다양성을 촉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벌기업이 나쁘다는 뜻으로 비쳐집니다만.

“아닙니다. 재벌을 처벌하자거나 묻을 닫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다 균형성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 같은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윗부분만이 발달되어 무거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은 수많은 달걀을 손바닥만한 바구니 하나에 담으려 하고 있어요. 하나가 잘못되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구조입니다.”

창조적 인간 기를 수 있게 교육시스템 통째로 바꿔야
숫자에 일희일비하기 싫어 주식엔 절대 투지하지 않아
‘고령화 사회=비용증가’라는 도식적 경제개념은 바꿔야


■변화를 거부하는 교사들이 교육, 비즈니스를 망친다

―만약 10대이거나 고등학생이라면, 어떤 언어나 어떤 분야를 공부하시겠습니까?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다 다르니까요.”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는 쓰고 생각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지식을 추구하면서 만족감을 느끼지요. 모든 사람들은 다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식 투자에서 많은 돈을 번 친구 부부가 있는데 똑똑한 아들과 딸이 있어요. 부모가 금융 분야에 있어서 딸이 금융 분야에 종사하기를 바랐어요. 딸은 유명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아주 불행해했습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해서 심리학자가 되었어요. 현재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데 아주 행복해해요.”

―어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동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아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한국이든 미국이든 모든 사회가 5살 이상 된 아이들을 수년간 감옥에 가두고 있어요.”

―감옥이라니요?

학교라는 감옥 말입니다. 학교는 현대사회의 유일한 의무 제도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외치지만,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얘기입니다.”

―의무 교육에 반대하십니까?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나이에 학교에 가서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나요? 말도 안돼요. 어떤 아이들은 3살에 학교에 입학할 준비가 되어있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8살이 되어도 준비가 안 돼 있을 수 있습니다.”

―획일적인 교육이 문제라는 지적이시군요.

공장 같은 교육 제도는 터무니없습니다.”

―교사들의 역할은?

“교사들이 효율적으로 미래의 기업 환경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요. 교육과 비즈니스는 항상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훗날 기업의 일원들을 길러내는 게 교육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육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미국 공교육의 기초가 다져진 때가 19세기 말입니다. 당시 공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산업화에 걸맞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주들은 아이들이 제때 일하러 공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이들을 ‘공장형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게 가장 큰 현안이었죠.”

―공업 교육 위주였겠네요?

“공업 훈련(industrial disciple)을 주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제는 기업들이 다른 가치를 요구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조성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 아니라 온 세계가 이러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 시스템을 재구성하자는 논의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볼리비아의 교사들이 최근 강성 노조를 만들었어요. 변화에 무조건 반대합니다. 볼리비아 대통령은 최근 1~3학년의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월반(越班)제도를 제안했어요. 하지만 교사들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자그마한 변화도 반대하는 반동적 교사들(reactionary teachers)은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럼요. (그는 한국의 전교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친(crazy) 짓입니다.”


■교육 개혁은 뿌리째 바꿔야 한다

―교육 개혁 방향은?

“한두 해 전에 빌 게이츠가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교육 시스템을 기존 시스템의 토대 위에서 개혁(reform)할 수는 없다. 아예 뿌리째 바꿔야(replace)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 교육이 계속되면? 결국 학교가 실업자를 양성하는 셈입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육에 사용되는 돈의 일부를 실험 학교에 투자하면 어떨까요? 현재 미국 아이들 중 1% 정도가 부모들로부터 교육(home schooling)받습니다. 좀 더 극단적인 그룹은 아예 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도록 놔둡니다.”

―실험학교를 대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캘리포니아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장애인들을 위한 제품을 만듭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한마디로 사악합니다(evil).”

―교사들은 어떤가요?

“교사들은 무언가 변하면 항상 크게 반발합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만약 한국이 시장지향적이면서 기업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을 개발(invent)해 낸다면 이는 오늘날 교육과 비즈니스 사이에 있는 막다른 골목(deadlock)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될 겁니다.”


■비자본의 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

―앞으로 어떤 산업이 유망할까요?

“조금만 달리 보세요. 새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요. 대표적인 발상의 전환은 ‘프로슈밍(prosuming)‘ 개념입니다. 앞으로 똑똑한 기업들은 의료 서비스를 대체하는 ‘셀프 케어(self-care)’산업에 뛰어들 겁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금까지 나는 혈압을 재기 위해 의사를 찾았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요. 10초 만에 혼자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일본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경제(money economy)에서 생산된 제품을 오히려 자본의 경제 밖으로 끌고 나온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제까지는 코닥을 통해 사진을 현상해 왔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내 힘으로 현상합니다. 사야만 했던 서비스를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큰 산업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 콘셉트’가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까?

“우리는 혁명적인 변화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어요. ‘고령화 사회=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도식적인 개념을 바꿔야 해요.”

―’자본의 경제'(money economy)에서 ‘비자본의 경제'(non monetary economy)로의 전환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경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경제학자들은 한가지 면만 파고듭니다. 첫 번째 측면은 단순히 소비자·생산자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사고 파는’ 돈의 경제(money economy)만을 연구합니다. 하지만 ‘비자본의 경제’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주시죠.

리눅스라고 있죠? 핀란드의 한 젊은이가 핀란드 어딘가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낸 후 “추가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추가해라!”라며 모두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어요. 돈이 목적이 아니에요. 심심해서 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중국 정부도 리눅스를 공식적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존 사고의 틀을 깬 리눅스로 인해 영역을 침범당한 겁니다. 경제 가치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나는 이를 ‘부의 시스템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부의 시스템은 크게 ‘자본 파트'(money part)와 ‘비자본 파트'(non money part)로 나뉩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것이나, 아픈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 쓰나미 구호활동 등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이걸 보지 못해요. (경제학자들) 정말 많이 틀리지 않습니까?”(웃음)

중국의 위성국가 안되려면 미국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국의 재벌은 대단하지만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는 격
하나가 잘못되면 엄청난 파장 중소기업 키우기 적극 나서야


■중국은 부패한 정부, 분노한 농민 때문에 수퍼파워 못 된다

―지식경제 시대의 세계경제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까? 유럽·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의 미래를 전망해주세요.

“혁명적인 변화의 시기에 예측은 어렵습니다. 내가 볼 때 중국이 꼭 수퍼파워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왜 그렇죠?

“중국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요. 지난 20년간 중국은 정말 놀라운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과연 폭발 없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내가 볼 땐 아닙니다.”

―어떤 갈등에 주목하십니까?

부의 속도와 집중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을 봅시다. 과거 공동체에 속해있던 영국 농민들은 산업혁명 이후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혁명의 시대가 왔죠. 지금 중국이 그렇습니다. 수억명에 달하는 불행하고 분노한 농민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반면 정부는 부패했습니다. 한편에선 돈을 엄청나게 긁어모으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중국 경찰은 해마다 7만번 이상의 시위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것만 그렇습니다. 얼마 전 사망한 자오즈양(趙紫陽) 전 당서기는 죽을 때까지 ‘없는 사람(Unperson)’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 혁명은 다른 맥락입니다. 문화혁명 당시 수백만명이 학살된 역사도 있죠.”

―내부적 갈등으로 중국이 두세 개 나라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뜻일까요?

“중국의 과거사를 보면 그런 적이 있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겠지만, 중국 리스크는 정말 큽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큰 일을 낼 수도 있다고 지적하셨던데요.

“일본은 전쟁 후 폐허로부터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돈이 넘쳐나 한때 원조를 받던 미국을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까지 투자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남의 제품을 모방하는 데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입니다. 매우 빠르고 샤프하고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상당 부분 배울 점이 많습니다. 경영 부문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법들을 거듭 발전시켜 왔습니다.”

―10년 장기불황을 겪기도 했는데.

관료주의 때문입니다. 종신고용제가 좋은 예입니다. 변화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은 하나를 바꾸면 연쇄적으로 모든 것을 따라서 바꿔야 합니다. ‘초(hyper)관료주의’ 사회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일본은 관료주의의 틀을 깨는 과정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기업들을 탐방하며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입니다. 일본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한국 장점은 전통 중시하면서도 개방적인 것

―한국에선 최근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질문을 하나 하죠. 아시아와 한국에서 미군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는가? 태평양 지역에 만약 미군이 없었다면, 그래서 지역이 매우 불안정했다면 아시아 지역이 이만큼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누가 불안정한 곳에 투자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국은 베트남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미국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우려하고 계시는군요.

“중국 친화적으로 가면 한국이 국제적인 외교나 경제 문제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국이 한국에 지배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면 한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하나의 지렛대(reverage)로 활용해야 합니다. 중국의 위성 국가로 전락하는 길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의 푸들뿐이 더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자주 오셨는데, 한국인들에 대한 생각은?

“정말 강한 문화를 갖고 있어요. 전통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과는 다릅니다. 아랍 국가들은 과거에 매몰돼 있거든요. 최근 30명 아랍 지식인들이 만든 보고서를 봤는데, 매우 충격적인 통계가 있었어요. 매년 헝가리어로 번역되는 아랍의 저서는 9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에 번역되는 헝가리 책은 ‘0’입니다. 아랍 사회가 그만큼 문을 꽁꽁 닫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랍 국가들은 폐쇄적입니다. 한국은 개방됐습니다.”

■날씨만 빼면 도쿄에서 살고 싶어

―세계 여러 곳을 다니셨는데, 가장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동부 출신이면서, 왜 캘리포니아에 사는지 많이들 묻습니다. ‘아시아를 자주 가는데, 미국 동부보다 서부가 아시아와 가깝고, 친구가 많으니까’라고 얼버무립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는 ‘날씨’가 좋아서입니다. 정말 1년 내내 날씨가 좋죠. 날씨만 빼면 도쿄(東京)를 택하겠습니다.”

―왜 그렇죠?

“왠지 모르게 편하게 느껴집니다. 대도시여서 편리한 시설이 잘 돼 있습니다. 말도 그렇고, 미국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미디어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분명한 사실은 신문은 앞으로 오랫동안 정말 어렵고 고통스런(long tough) 시간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어요. 1950~1960년대 TV가 보급되면서 미국 잡지도 생존의 기로에 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독자가 원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도 자동차가 있습니다만, 몇 년에 한 번씩 바꿉니다. 그러나 매일 또는 매주 새로 나온 자동차 기사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잃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지만 요즘 신문들 보세요. 섹션이다 뭐다 해서 분량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동차 섹션 등 몇몇 섹션은 집에 배달되는 순간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웃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몇 년 전 일본 제국호텔에 묶을 때, 아사히(朝日)신문이 섹션을 여러 개 묶어서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개 섹션을 사느냐에 따라 가격을 달리 받더군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앞으로는 독자가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거기에 맞게 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게 필요한 정보라면 돈은 얼마든지 낼 용의가 있습니다.”

―어려운 얘기하시네요.

“(웃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비밀을 하나를 공개할까요. 저는 신문 중독자입니다. 하루도 신문을 보지 않고는 못삽니다.”

―젊어서 기자 생활도 하셨죠.

“네, 신문은 정말 정말 ‘정보와 지식의 보고’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세계의 신문을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NYT, FT, WT, 요미우리, 아사히 신문 등 6~7개를 샅샅이 읽습니다. 터키 신문도 보고요. 어느 나라를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려면 신문을 보면 됩니다. 신문에는 세계가 돌아가는 소식이 실리고, 매일 새로운 지식이 실립니다. 아침에 몇 시간 동안 신문을 다 읽고 나면 손가락 밑이 까맣게 될 정도입니다.”(웃음)

―건강 유지 비결은 있나요? 엄청난 여행 스케줄이 소화하고 계신데.

“전 여행을 즐깁니다. 운동은 약간씩 하는 편이고. 농구장이나 테니스장에서 몇 시간씩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적죠. 식사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위주로 매우 가볍게 하는 편입니다. 고정된 건강 관리법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 하는 거죠.”

*출처:조선일보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8535&logId=1695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