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에너지와 쿤달리니

자유 에너지와 쿤달리니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자유 에너지, 생명력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 3부, p118-121

“척수 신경의 맨 가운데 있는 척수인데, 이것은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대롱으로 되어 있어요. 이것은 쿤달리니라고 알려진 힘이 깨어났을 때 다닐수 있는 대롱이지요. 척추의 맨 끝에는 동양인들이 뱀의 불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생명 그 자체의 자리지요….척추 끝에 감겨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뱀과 같은 것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얼마동안은 갇힌 상태에서 벗어날수가 없어요 이 신비로운 뱀의 형상을 일컬어 쿤달리니라고 하는데 깨우친 동양인일 경우 뱀의 힘이 척수 신경의 통로를 따라 곧장 뻗쳐져서 머리 끝까지 똑바로 올라가서는 마침내 그것을 넘어 아스트랄계로 들어서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잠재돼 있던 힘이 각각의 차크라(회음부, 단전, 배꼽, 가슴, 목, 이마, 정수리의 일곱 개 차크라 이중에서 둥북아시아는 하단전과 중단전인 심장 그리고 상단전인 정수리 이 세가지만 강조함)의 중심이 되는 곳을 활발하게 해주지요. 그래서 그러한 몸의 중심(영혼과 육체의 중심기관이 차크라임)들이 깨어나게 되면 그 사람은 생기가 돌고, 힘이 솟고, 정력이 넘치게 되지요. 

뱀의 힘을 완전히 조절할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할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산을 움직이게 한다거나, 물위를 걷는다거나, 공중부양, 완전히 닫힌 관속에 갇힌채 있다가 지정된 시간에 다시 나올 수도 있는 등의 기적/초상적인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그렇지만 성자들은 그런 일들을 할 이유가 없지요. 아무 의미 없이..)“

출처: 쿤달리니 차크라 나디 나선형구조

 

트랜서핑의 3단계

트랜서핑의 3단계

  1. 자유에너지 통로 활성화
  2. 목표의 슬라이드 심상화
  3. 투명한 눈으로 응시하기(맑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1단계 자유에너지 통로 활성화에 대한 설명들 

  • 첫번째 단계에서는 중앙의 에너지 흐름을 기억해내야 한다. 
    마음으로 에너지가 척추를 따라 아래로, 위로 흐르는 움직임을 심상화한다. 중앙의 에너지 흐름을 활성화시켜주는 열쇠를 돌리는 것과도 같다. 그 흐름을 구체적형태로 만들기 위해 화살을 분수로 바꿀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가 충만하게 흐르는 상태를 심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열쇠를 돌리는 것이 트랜색션의 첫번째 단계다.   – 3권, 166 p
     
     
  • 하나는 위에서,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마음속으로 그 두개의 분수를 연결하라. 그러면 당신은 에너지 구체 속에 들어 있게 된다. 그런 다음, 당신의 몸 표면에 주의를 보내라. 그저 단순히 피부의 표면을 느끼라. 그리고 그 느낌을 구체로 확대시키라. –3권, 25p  외부의도의 힘의 세기는 당신의 생명력의 강도에 비례한다. … “나의 에너지 통로는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의도 에너지도 커지고 있다.” –3권, 34p
    • 첫째, 보호막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준다. 
    • 둘째, 당신은 생명력을 단련시킴으로써 에테르의 통로를 청소한다. 에너지 흐름을 막고 있던 덩어리들은 씻겨나가고, 에너지가 새나가게 하던 오라상의 구멍들이 닫힌다. –3권, 26 p

 

 

자유에너지 

 

  • 에너지를 축적하려고 하지 말라. 
    그 대신 에너지가 반대 방향의 두 흐름으로 당신의 몸속을 자유롭게 통과하도록 허용하라. 
    에너지 통로가 너무 좁지만 않다면, 당신은 자유에너지를 양껏 사용할 수 있을것이다. – 3권, 28p

http://m.cafe.daum.net/transurfing/RTeI/207?listURI=%2Ftransurfing%2FRTeI%3FboardType%3D

 

Business Meditation: 명상 메모 2013

Business Meditation: 명상 메모 2013

meditation_memo2년 전에, 건강이 나빠져서 기공(외기공, 명상만 함.) 수련을 한 이후 2 년간 매일 점심 시간에 식사 대신에 명상을 해왔습니다. 1시간 가까이 하다가 요즘은 강도를 낮춰 30분 정도 합니다.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오래 앉아 있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오더군요. 그래서 요즘에는 가부좌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등은 세우고 발바닥은 바닥에 붙이는 자세로 명상을 합니다. 삼매에 드는 깊은 명상은 아니고 뇌파로 말하면 알파에서 쎄타 정도의 깊이로 들어가 주로 하는 일은 시각화(Visualization)입니다. (뇌파에 대해서는 뇌파특성도표를 참고 바랍니다.)

 

명상 중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도 하고 페이스북에 공유도 합니다. 특별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올해 페이스북에 기록한 메모를 찾아 올립니다. 올해 기록한 메모가 몇 개 더 있는 것 같은데 해쉬태그(#) 검색이 안되네요. 앞으론 명상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그때그때 블로그에 담아야 할 것 같네요. 명상 메모를 비지니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명상법(Business Mediattion)으로 발전시켜 볼까 하는데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품었던 생각이기도 합니다.   

내년 부터는 호흡명상(조식)도 시도해 보려 합니다. 호흡수련은 인체의 에너지 센터로 알려진 차크라를 강화하는 수련으로 에너지(자유 에너지)를 끌어 올리고 의도의 힘을 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유 에너지가 부족하면 일에 대한 추진력도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큐브 속의 남자

큐브 속의 남자

Astor Place Cube처음에는 이 사람의 사는 모습을 간단히 포스팅할 생각이었는데 번역을 위해 반복적으로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주인공 Dave는 눈부신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에 동기화된 빠른 생활 리듬과 산만해지는 정신 등의 부작용을 앓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흠.

 

 


데이브(Dave)는 크리에이티브 작가입니다. 뉴욕의 거리 상징물인 애스터 플레이스 큐브(Astor Place Cube)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 생활의 스트레스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압박 속에서 살았는데 작가로서 도시를 벗어나 살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이 큐브를 지나가다가 이 안에서 살아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큐브를 아파트로 개조하고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큐브는 한 면이 가로 세로 약 2.4 미터(8 피트)인 정육면체입니다. 키가 177 cm (5.8 인치)인 그에게는 충분히 넓은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이리 저리 움직일 수도 있고, 운동도 하며 글을 쓰고 잠을 자고 그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도 즐깁니다. 데이브는 실내 조명과 몇개 안되는 전기 도구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자전거 발전기를 사용합니다.
 
그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매일 새벽 3시나 4시 쯤 일어나서 큐브 안의 쓰레기와 변기 배설물 등을 치우고 세탁도 하고 장도 보고 남들이 출근할 무렵에 큐브로 돌아 옵니다. 
 
나는 와이파이도 인터넷도 안되는 단절된 공간인 큐브에 살면서 문자 메세지, 전화, 소셜미디어 그리고 이메일 등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었으며, 스스로 의지를 낼 수 있는(연결을 통해 부여 받는 동기없이) 위대한 명상 테크닉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60초 명상법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이 할 일은 파워를 끄고 스스로를 리부팅시키면 세상을 떠맡을 준비가 됩니다.나는 보다 집중적이고 생산적인 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큐브 안에서 살 필요가 없죠.” 
 

 

명상(공부)하기 싫은 이유와 대처 방안

어제 정신세계사를 창업하고 대표를 지내셨던 송순현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마인드콘트롤 기법 중 하나인 시각화(Visualization)를 하면 꿈을 실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실행으로 옮기는 건 잘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귀신이 방해하는 걸까요? 아니면 업장이 가로 막고 있는걸까요?

그런 추측들을 해봤으나 그리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크게 말하면 업장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아무데나 가져다 붙여도 말이 되는 막연한 얘기죠. :-)  그런데 오늘 아침 블로그 정리 중에 우연히 잊고 있던 아래 블로그 글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그 의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래 블로그 글의 제목을 바꾸고 말을 덧붙여 재 포스팅합니다.

대흠.

PS. 이것도 작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페이스북 친구이며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의 작가 김범진님의 글입니다.  명상이 생활화된 분들 조차도 때론 명상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학교 공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행위로서의 명상은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첨부한 페이스북 글은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걸 달래는 방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명상과 일상 사이에 완충 지대가 필요하단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때때로 이런 방법을 쓰기도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