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술사(術師) 삼비팔주(三飛八走) 이야기

이들의 숱한 기사와 경천 동지의 일화들은 소설 (단)에 언급되어 있거니와, 봉우 선생의 증언처럼 하늘은 어째서 이런 뛰어난 인재들을 잠시 선보이기만 하고 곧 데려가 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당시 정신계의 중진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각기 개인적으로 지니기엔 너무도 아까운 초인적 정신력과 체력을 습득하고 있었으나, 거의 모두가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접맥되지 못한 채, 스러져간 비운의 인물들이란 공통점을 가진다.

 

삼비팔주 열한 명은 하나의 모임을 형성할 정도로 정신적 공감대를 지니고 있었으며, 잦은 회합과 접촉을 해 왔는데 그 중 주축을 이루는 세력은 충북 족비산(당시 족비산파는 족비산에서 좌도수련으로 성공한 팔무자생으로서 성공자 여덟 명이 모두 무자년 태생의 동갑내기들이다. 이 밖에 세 사람이 더 있다. 이들은 동시대의 소백산파 128장사들보다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났다고 한다. 족비산의 현재 지명은 충북 음성, 진천 쪽에 걸쳐 있는 두타산이다)에서 수련한 박양래, 주회인, 주기악, 윤신거, 이화암 등 다섯 사람이었고 모임의 좌장(우두머리)은 박학래가 맡았다.

 

박학래는 당시 백두산족 정신계의 우도방주(자동수련계의 총책임자, 우두머리)이신 일송 선생님의 손제자였으며, 박양래, 주회인, 주기악, 윤신거, 이석렬 등도 같은 손제자에 속했다.박학래는 어디서 와서 누구에게 배웠는지가 불분명하고 늘 말이 없으며, 뚜렷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으나, 삼비팔주 모두를 정신적으로 압도하는 우두머리 위치에 있는 특이한 존재였다.

 

단 한번 조선 검법의 최고 정화라는 ‘비홍검’을 실연해 보였기 때문에, 단지 우리 나라 전래의 검법 달인이 확실하다는 정도의 인식 외에는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삼비팔주에 속한 다른 사람들 가운데 관심, 관물을 밥먹듯이 한다는 정신계 중단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들도 박학래만은 관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도력이 중단 이상인 고단자급의 인물로 추정된다.

 

박양래는 충북 진천 태생으로서 족비산파의 우두머리격이다. 족비산에 들어가 좌도공부에 진력하여 크게 성공한 후 잇따라 여덟 사람의 동갑내기들이 성공했다는 일화의 처음을 이루어낸 장본인이며, 나중에 우도공부에도 장족의 발전을 하여 문무를 겸비한 도계 중단 이상의 실력을 길렀다.

 

경기도안성에서 조금 떨어진 양성 땅의 이인이라는 김좌숙-늘 앉아서 잔다 하여 붙여진 별명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나중에는 스승을 앞지를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삼비팔주 가운데에서도 가장 비운의 주인공으로서, 제갈량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니고서도 시운을 타지 못 한 잠룡이었다. 그는 시정의 은사로 평생 가난을 달갑게 받아들이며 살다 죽었다.

 

이홍몽은 삼비팔주의 주류는 아니었으나, 정신계 중단급의 역량을 지닌 사람으로서 도계의 감찰 역할을 맡고 있었다. 삼비팔주 안에서 별로 인기가 없던 사람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모임에는 꼭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한번은 박양래와 검을 들고 대결하다가 빈손의 박양래에게 검을 빼앗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주회인은 경기도 태생으로 천성이 호방하고 활달하였으며, 역시 족비산에서의 좌도수련에 성공하여 을척을 지니고, 축지, 이보, 차력 또한 입신의 경지에 있었다. 그가 경복궁에 있는 일만 이천 근짜리 무쇠솥을 들어올렸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문무겸전의 인재로 도계 4단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주기악은 충북 진천 사람으로서 얌전한 성품의 소유자이며, 족비산파의 한 사람이다. 차력을 전공하였고, 나중에 우도로 정근하여 도계 2~3단은 되었을 정도로 문무를 겸비한 선비이다.

 

김경두는 전남 순창 사람으로 얼굴이 까마귀같이 시커멓다 하여 호가 오운이다. 삼비팔주 가운데 제일 나중에 합류한 사람으로서 차력이 전공이었다. 점술에도 밝았으며, 문학, 철학, 역사학에도 깊은 학문적 조예가 있었다. 해방 후 무주 덕유산에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윤신거는 경기도 수원 태생으로 족비산파의 한 사람이며, 차력을 약간 하고 산주 박양래 밑에서 사시산을 전공하였다. 사시산법만은 산주의 수제자가 되었으며, 자신도 나중에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도계 초단은 족히 되었다고 한다.

 

이화암은 충북 청주 사람으로서 족비산파의 한 사람이며, 차력이 전공이다. 뒤에 자동수련도 겸하여 도계 1-2단은 되었다.

 

이석렬은 전라도 사람으로서 일송 선생의 손제자가 되며, 역시 차력이 전공이었다.

 

이우석은 전라도 태생인데 피동공부에 성공하여 신차에 능했고 을척을 지녔었다. 취물에도 능하였는데, 을척을 사사로이 쓰다가 신벌을 받아 횡사하였다고 한다.

 

강경도는 경상도 사람으로서 축지가 전공이며, 우도수련도 하였으나, 계제가 있을 정도는 못되었다. 독립운동에 깊이 간여하였으며 자신의 축지술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비팔주 가운데 가장 용모가 뒤어났다고 한다.

이상이 삼비팔주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봉우 권오훈저 우리민족의 정신수련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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