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일기(8) – 졸린 눈을 비비며…

식구들은 잠들고 지금은 글을 올릴 마음은 아닌데 연재를 하다보니 의무감 비슷한 게 발동하네요.

가족들과 이곳 영국에 살림을 차린 지가 일주일이 다 되어 갑니다. 외로움이 사라진 대신 다른 사소한 걱정거리들이 생기네요. 별 것들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큰 애의 지루함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은근히 신경이 쓰입니다. 쓰지않는 노트북을 회사에서 빌려와 인터넷으로 친구들과 채팅을 하긴 하지만 하루가 아마 무척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거라 생각합니다. 천안에 있으면 학교갔다 돌아 와서 컴가지고 좀 놀다 학원가고 밤이 늦어서야 집에 오는 바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조용한 영국의 시골 동네에 친구도 없이 동생들이 있긴 하지만 하루종일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

그래서 딸 아이에게 ‘여기 놀러 온게 아니라 여러가지 배우러 온 거야. 이런 지루한 생활을 참아내는 것도 중요한 거란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딸아이도 금촉(禁觸)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죠.

반면에 막내(4살)와 둘째 딸(8살)은 여기 온 걸 무척 좋아합니다. 집이 2층이라 신기한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하루종일 잘 노네요. 막내는 집에 갈때 계단을 갖고 가자고 합니다 ^^.

여기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브라이튼이란 남쪽 해안도시에 직장동료가 머물고 있는데 그저께는 거기에 있는 한국 수퍼에서 김치,우리 쌀,된장,깻잎,참기름,간장,만두등을 사왔습니다. 신김치에 흰쌀밥만 먹어도 어떤 고급 요리 부럽지 않습니다. 호박에 풋고추 그리고 공장에서 나온 된장을 풀어 끊인 된장국도 좋고요. 이제 배가 슬슬 다시 나오려 하는 것 같네요.

이번주 일요일은 브라이튼의 동료와 우리 가족이 윈저성이란 곳으로 놀러갑니다. 김밥 싸가지고서… 우리 가족들이나 저나 한 주간의 묵은 상념들을 털어내고 좋은 시간을 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제 회사의 차장 한사람이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전직원들한테 메일을 띄웠는데 첨부된 시가 가슴에 와 닿네요.

– 성 공 –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며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평의 정원을 가꾸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2002.10.12

*^^*————————————————
어제는 임원중 한 분이 회사를 떠나 송별식에 참석했습니다. 1차가 끝나고 2차는 맥주집, 그런데 젊은 직원들이 바람을 잡아 3차로 나이트클럽까지 갔습니다.

5개월 만에 돌아온 천안은 또 여기저기가 변해 있더군요. 한적했던 곳인데 거기 나이트 클럽이 들어서며 그에 죽이 맞는 여러가지 시설들(여관,포장마차등등)이 들어서고 있네요.  

여러 해 전에는 영국의 IT Manager 아닐 파텔이 일년에 한번 정도 천안을 방문하곤 했는데 올때마다 바뀌는 도시를 보며 놀랍 다고 하더군요.  영국같은 선진국은 이미 모든 게 안정이 되어 거의 변화가 없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으면서 급격한 변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그 친구의 놀라움이란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함도 생깁니다.

2차만 하고 집에 가려했는데 잘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그게 쉽지 않지요.  아무튼 오랜만에 지극히 한국적인(?) 놀이문화의 맛을 봤습니다.

춤맹이지만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나이트 클럽의 라이브밴드의 연주를 감상하고  현란한 싸이키 조명아래 춤추는 남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단지 제일 싫은 건 같이 간 사람들이 그런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것.

台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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