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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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신의 능력을 개인적인 목적에 끌어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히말라야 대사들에 따르면 신은 인간에게 그의 권능을 부여했고 인간이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락 했다고 한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허공에서 빵을 만들어 내고, 벽을 뚫고 순간이동을 하기도 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무리들까지 물 위를 걷게 하는 도술을 부린다. 그러나 대사들은 그들의 엄청난 능력에 어떠한 권위도 내세우지 않으며 매우 겸손하고 능력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한다. 그들은 인간은 주어진 그러한 능력을 이용하여 삶의 풍요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음과 양은 전방위적으로 분화한다. 원리와 물질을 음양(陰陽)의 관점에서 보면 원리는 ‘양’이요 물질은 ‘음’이다. 단순히 원리가 물질에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음양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원리에 집착하고  부나 물질을 금기 시 하면 그 원리는 도그마(dogma)로 변질되고 원리에 집착하는 자는 근본주의자가 되고 근본주의는 폭력으로 변질되기 쉽다. 반대로 돈에 집착하여 음이 강해지면 마찬가지로 음양의 조화가 깨지게 된다. 음양의 조화 속에 있을 때 우주 만물은 막힘없이 흘러가면서 진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음양오행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정도 이해하는데 뭐 깊고 어려운 공부가 필요한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원리나 이론이라도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해석을 독점하고 있는(심지어는 마음 깊은 곳에 그것을 통해 대중들에게 군림하려는 욕심을 품고 있는) 일부 인간의 오만, 독선 혹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음이 강해져서 사람이 부나 돈에 집착하는 것은 경계를 해야 한다. 특히 부나 돈을 획득하는 방편으로 우주의 원리나 신의 권능을 이용 한다면 더욱 그렇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저자 바딤 젤란드는 인간이 외부의도(신의 힘)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이 아틀란티스 등 고대 문명들이 멸망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봉우 권태훈옹은 사욕을 채우려 도술을 함부로 쓰면 신의 벌(神罸)을 받아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했다.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서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이 다치게 되는 것이다.

부를 추구하고 누리는 것은 의식의 진화를 위함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를 경험함으로써 진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부처, 예수, 어떤 성인도 그들의 어느 멀고 먼 이전의 삶에서 같은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오쇼 라즈니쉬도 어느 책에선가 그런 말을 했다. “부처나 예수 같은 성인들도 태평성대에 출현한다”. 다른 대륙에 비해 아프리카에서 성인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이를 뒷받침 한다고 본다. 의식을 지수로 나타낸, 도판에서 생불로 칭송을 받던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 박사의 국가별 의식 측정지수를 보면 미국인이 한국인 보다 의식지수가 월등하게 높다. 굳이 이런 검증되지 않는 지수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인 면에서 미국인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높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 건 영적으로도 중요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통 사람들 사이에 부자나 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돈이 들어오는 길을 막는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이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었던 관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부를 추구하고 경험하고 즐겨야 할 것이다. 동시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며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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