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만나는 혼자만의 시간 (禁觸)

이제 경제 동물로서의 인간이 진화를  거듭해서 가야할 곳에 도달하기 시작하는 것 같군요.

우리의 전통 정신 수련인 신선도(풍류도)에서는 인간 진화의 수단으로 3대 혹은 삼법 수련을  이야기 합니다.
지감(止感), 조식(調息) 그리고 금촉(禁觸)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병일씨는 아래 글에서 비지니스맨에게도 바로 ‘금촉 수련’이 필요한 시대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촉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글 말미에 드러내고 있지만요 … ^^

단군신화를 잠시 보면 …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 ― 제석(帝釋)을 이름 ―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계시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人間世上)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 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그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佰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 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神,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桓雄)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M_ more.. | less.. | 단군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요 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이니,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아마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에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弓)―혹은 방자(方字)로도 되어 있다.―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 오백 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천9백8세였다.
이걸 저처럼 해석하는 글은 본 적이 없으나 곰이 삼칠일(21일간)의 수행을 통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금촉 수련을 상징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_M#]

금촉을 통해 짐승이 사람으로 업그레이드 된다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금촉 수련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어느 수행 단체에도 이와 같은 수련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내면과 직접이고도 완전한 대면을 통해 나를 알고(소크라테스) 결국 신성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봅니다.

외로움을 겪어내야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말은 쉽게하지만 저도 아직 감히 시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일요일 홀로 사무실에 나와 이것 저것하는 중인데 외롭기도 하고 가끔은 두렵기도 합니다.
일종의 가벼운 금촉인 셈이죠.

앞으로 보다 많은 경제/경영인들이 이런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숙명이랄까…
결국 모든 인간의 행위는 그들의 정신이 진화하는 길(道)로 귀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길 기원해 봅니다.

대흠.

[2007년 2월 10일 토요일]
나 자신과 만나는 혼자만의 시간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7.2.8)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24시간 이용 가능한 통신 기술 때문에 다섯 가지 습관 가운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습관화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멀어졌던 상태, 즉 현실의 문제를 모두 잊고 하나님과 단둘이 있게 된다.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시간은 우리를 어색하고 불안한 상태로 내몬다. 처음에는 ‘바쁘게 돌아가던 일을 멈출’ 기회를 찾는
것이 어색하겠지만, 이를 실천하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

사실
가만히 돌이켜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갖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바쁜 일상. 숨가쁘게 돌아가던 일상이 멈추면
쓰러져 잠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다 ‘타의’로 혼자 있게 되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고 어색해집니다. 그래서 TV를 켜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정면’으로 나 자신과 대면하며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말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모두 잊고 내면의 나와 단둘이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나의 내면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복잡하고 혼미한 일상의 때를 벗기고 마음을 새롭고 신선하게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이런 깨끗한 마음에서 보람있는 삶도, 성과도, 리더십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골방에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400~500명이 모여 있는 예경모 모임 장소 속에서도, 다른 이들의 열정을
느끼며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도 좋겠지요. 모임이 끝나고 국기원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며 하루를, 한달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혼자만의
시간’. 의식적으로 반드시 챙겨야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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